최석진법조전문기자
검찰 내 대표적 '기획통'으로 꼽히는 심우정 법무부 차관(사법연수원 26기)이 후임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가운데 검찰에 산적해 있는 과제들을 잘 풀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12일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나머지 3명의 '특수통' 후보들 대신 심 후보자를 선택한 것은 검찰 조직의 안정과 대통령실과의 소통에 방점을 둔 결정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 대통령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연구관·중수2과장·중수1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거친 대표적인 '특수통' 검사 출신이다. 총장 시절 자신을 총장에 임명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을 강도 높게 수사했던 그는 '특수통' 검사들의 '반골' 기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특히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나 이원석 검찰총장이 김건희 여사 수사에 대해 '원칙'과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는 모습을 지켜본 윤 대통령은 뛰어난 수사 능력을 가진 '특수통'보다는 정책과 법무 행정에 밝고 정무 감각이 뛰어난 '기획통'에 마음이 끌렸을 것으로 보인다. 역시 '기획통' 검사 출신으로 검찰을 비롯한 사정기관을 컨트롤하고 있는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과의 각별한 근무 인연도 심 후보자의 낙점에 일조했을 것이다. 김 수석과 심 후보자는 2005년 대검 기획과장과 대검 연구관으로, 2007년 법무부 검찰과장과 법무부 검찰과 검사로, 2014년 법무부 검찰국장과 검찰과장으로 각각 함께 근무했다.
이 같은 지명 배경에도 불구하고 심 후보자가 총장에 임명되면 대통령실이 예의주시할 난제들이 잔뜩 쌓여있다. 전날 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소감에 대한 그의 첫 일성은 "엄중한 시기에 후보자로 지명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였다.
당장 명품백 수수 의혹 사건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 김 여사 관련 사건 수사를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해야 된다. 후자의 경우 총장의 수사지휘권이 배제된 상태지만 최종 처분에 앞서 대통령실과의 소통이 불가피한 사안이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지휘에 따라 총장에 대한 사전 보고도 없이 대통령실 경호처 부속청사에서 사실상 '방문 조사'가 이뤄진 상태인 만큼 불기소 처분이 됐을 때 야당과 여론의 비난은 고스란히 심 후보자의 몫이 될 수 있다. 전날 그는 관련 질문에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다.
다수의 민주당 현역 의원들이 연루된 돈 봉투 사건, 문 전 대통령의 옛 사위 부정 채용 의혹 사건, 김정숙 여사의 인도 타지마할 외유성 출장 의혹 사건, 권순일 전 대법관의 이재명 전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 거래' 의혹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에 대한 수사가 여러 건 진행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이 전 대표와 부인 김혜경 여사 재판의 효율적인 공소유지를 통해 최대한 신속하게 결과를 받아내는 것도 심 후보자에게 주어진 과제다.
그는 문재인 정부 시절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을 맡았었고, 윤석열 정부 들어 대검 차장검사, 법무부 차관을 지내며 국회 관련 업무 경험이 많아 다른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야당 의원들과도 관계가 나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총장에 임명돼 전 정부 인사나 야당에 대한 수사를 책임지게 되는 순간부터 야당의 집중포화를 감수해야 할 운명이다.
나아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주도로 이뤄지는 잇단 검사 탄핵과 검찰청 해체 움직임에도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송광수 전 총장은 대검 중수부 폐지 움직임에 "내 목을 쳐라"라며 맞섰고, 이명박 정부 시절 한상대 전 총장은 대검 중수부 폐지에 반대하는 최재경 당시 대검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가 검사장들을 비롯한 일선 검사들의 집단 반발에 물러나야 했다. 문재인 정부 때 문무일 전 총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이 가시화되자 기자회견을 열고 양복 상의를 흔들면서 "옷을 흔드는 게 무엇이냐"라며 검찰의 중립성을 흔드는 정치 세력을 에둘러 저격하기도 했다. 누구보다도 유연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심 후보자가 총장이 되면 과연 어떤 행보를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