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형기자
최소 억대 연봉을 보장받지만, 대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을 다뤄야 하는 직업이 있다. 바로 '뱀독 추출사'다. 이 직군의 영문 명칭은 스네이크 밀커(Snake milker)로, 마치 소젖을 짜듯이 독사의 몸에서 맹독을 쥐어 짜내는 업무를 맡는다.
방울뱀 등 위험한 독사가 분비하는 독액은 성인 10명을 단숨에 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위험한 물질이지만, 사실 뱀독은 과학 연구에 요긴하게 쓰인다. 뱀독은 수많은 효소와 금속, 아미노산 등이 섞여 탄생한 '자연에서 가장 복잡한 독소'라 연구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향후 해독제나 새로운 약제 성분을 만들 때도 중요한 지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뱀으로부터 독을 짜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평생에 걸쳐 뱀의 생리를 연구하고 훈련해 온 파충류학자만이 뱀독을 짜낼 수 있다. 이 때문에 뱀독 짜내기는 '뱀독 추출사'라는 전문 직군이 맡는다.
뱀독 추출사는 대개 대학교 동물학 연구소, 혹은 파충류 전문 동물원(일명 '세르펜타리움')에 고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뱀독 추출사는 직접 독사를 관리하며 뱀독을 추출해 연구소에 납품하기도 한다. 환경 과학 직종 전문 소개 포털인 '엔바이러먼털 사이언스'지에 따르면, 뱀독 시장은 "공식 데이터가 없을 정도로 틈새시장이나, 제약사나 병원, 과학 실험실을 위한 중요한 일"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뱀독 추출사의 연봉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추출사는 다른 기관과 계약을 맺고 일하기 때문에 노동량에 따라 급여는 들쭉날쭉하다. 그러나 뱀독 추출사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 직업인 데다, 안전상의 이유로 국가적 규제도 까다롭기에 건당 계약 금액은 매우 높다.
2020년 미국 기준 급여의 중간치는 6만6350달러(약 9000만원)였으며, 숙련된 추출사는 11만6000달러(약 1억6000만원)도 받는다고 한다.
과거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 등 외신에도 뱀독 추출사가 소개된 바 있다. 미국에서 일하는 숙련 뱀독 추출사 짐 해리슨씨의 경우 매주 수백마리의 뱀독을 짜낼 만큼 일이 몰린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숙련된 추출사라고 해도 일은 여전히 극히 위험하다. 해리슨씨는 지금까지 8번 독사에게 물렸다고 하며, 그때마다 신체 일부를 절단해야만 했던 탓에 지금은 손가락 끝부분이 거의 안 남은 것으로 전해졌다.
뱀독은 인체의 어떤 부위에 침투하냐에 따라 독극물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성인 수십명을 죽일 수 있는 맹독을 품은 '블랙맘바'의 독소는 알츠하이머, 뇌졸중 연구에 쓰인다. 살모사의 독은 유방암 치료 연구 물질로 조명받고 있다.
이 외에도 혈전을 치료하거나, 혈압을 줄이거나, 심지어 심장마비 위험 완화에도 효능을 보였다고 한다. '자연에서 가장 복잡한 독소'인 만큼 그 잠재력도 무궁무진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