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이기자
최근 한국 정부가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로부터 6년 만에 성차별에 대한 평가를 받은 가운데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심의 대비를 위해 별도 논의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7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20대 국회인 2016년 '국제규약점검소위원회'를 구성했으나 21대 국회에선 소위 구성 자체가 되지 않았다. 지난 5월 14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서는 제9차 대한민국 국가 보고서에 대한 심의가 열린 바 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1979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여성차별철폐협약이 원활하게 이행되도록 감독하는 기구로, 협약 가입국인 한국은 4년마다 심사를 받고 있다. 국내법에서는 양성평등기본법을 통해 이행 점검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2016년 7월 15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회의록 속기록을 살펴보면 당시 여가위 위원장인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성·평화와 안보에 관한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수립된 국가행동계획과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등 국제규약의 이행사항을 점검하고 관련 정책을 심사하기 위한 국제규약점검소위 등 5개 소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시 구성된 국제규약점검소위는 총 8인의 위원으로 구성돼, 2018년 2월 13일 1차례 회의를 열었다. 이는 같은 달 22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차 국가보고서 심의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가위 홈페이지에 게재된 당시 소위 보고 자료에 따르면 소위는 회의에서 협약에 대한 의의와 심의 내용, 이행 절차 등을 공유하고 여성가족부를 비롯해 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법무부 등 소관부처별 이행 성과를 보고 받았다. 또 심의 이후 추진 계획을 명시해 '위원회가 제시한 최종 견해를 바탕으로, 소관 부처별 이행 계획 및 향후 진행 방향을 작성'하도록 했다.
반면 21대 국회에선 소위가 구성되지 않으면서 관련 심의에 대한 국회의 별도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심의를 위한 국회 차원의 사전 준비와 논의 절차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여가부도 이번 심의에 부처 수장인 차관이 아닌, 기조실장이 참석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는 여가부 및 여성 정책에 대한 국회의 무관심으로 해석된다. 21대 국회에서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여야 공방, 세계잼버리 파행 등으로 인해 여가위 회의 개최가 무산되는 일이 잦았다. 지난 1월 여가위 법안소위는 8개월 만에 열리기도 했다. 각 의원이 다른 상임위와 겸임해서 담당하는 상임위라는 한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1대 전반기 여가위원장을 맡았던 정춘숙 전 민주당 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이번에 스위스에서 열린 심의도 국회는 알지도 못했다"며 "심의에 꼭 가야 한다고 이야기해서 겨우 참석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21대 국회에서는 여가위 자체가 그렇게 활성화되지 못했고 따로 구성이 안 된 이유는 모르겠다"며 "소위를 구성할 의무는 없기 때문에 특별히 챙기는 사람이 없거나 국회 차원에서 다루지 않아 구성이 안 됐을 수 있다"고 전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한국 정부는 CEDAW에 가입돼 있는 나라고 이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지위를 갖고 있다"며 "입법부가 정부의 이행 상황에 대해서 점검을 할 필요가 있고 입법 과제, 예산 문제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점검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2대 국회에서도 국제규약점검소위 구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여가위 소속인 김남희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여가위 첫 번째 전체회의에서 "정부 대응에 국제 규약의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관련 정책을 심사하기 위한 소위원회 구성을 요청하고자 한다"며 "22대 여가위에서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대응하는 정부 대응 및 답변의 부실함에 대해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