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권해영특파원
"여름휴가를 즉시 취소하고, 지금 당장 금리를 인하하라. 6주나 기다릴 수 없다".(엘리자베스 민주당 연방상원의원)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또다시 뒷북 논란에 처했다.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동결한 후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미국 금융시장을 뒤덮으면서다. Fed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FOMC에서 기준금리를 연 5.25~5.5%로 8연속 동결한 지 불과 하루 뒤 제조업 경기와 고용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는 지표가 나왔다. 금리 동결 이틀 뒤인 그다음 날에는 실업률이 치솟았다는 지표가 추가됐다. 마치 Fed의 결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공교롭게도 금리 동결 직후 경제가 급속히 악화됐다는 신호가 연이어 확인됐다. 뉴욕증시는 급락했고 미 국채 금리는 10년물 기준으로 반년 만에 3%대로 수직 낙하했다. 7월 금리 동결은 "심각한 실수(Serious mistake)"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Fed의 금리 동결 후 나온 지표들은 미국이 경기 침체 국면으로 향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실물경제와 노동시장 냉각 속도가 너무 빨랐다. 1일 미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7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6.8로, 전망치(48.8)와 전월 수치(48.5)에 크게 못 미쳤다. 50을 넘으면 경기 확장, 50을 밑돌면 경기 위축을 의미하는데 지난 3월 이후 계속 50을 하회한 데다, 위축 속도까지 가팔라졌다. 이튿날인 2일 공개된 지표도 우려스러웠다. 미 노동부의 7월 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비농업 신규 고용은 11만4000건으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실업률은 4.3%로 전월(4.1%) 대비 0.2%포인트 올랐다. 2021년 10월 이후 최고치이기도 했다. 파월이 9월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며 언급한 '고용 위험'이 위태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이번 FOMC 전 월가에서 나왔던 '7월 인하론'은 이제 '7월 실기(失期)론'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Fed가 7월에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려 통화 정책상 운신의 폭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7월 동결을 결정해 스스로 그 공간을 닫아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제 시장은 9월 금리 인하를 넘어 Fed가 다음 달 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할 것이란 '빅컷'에 베팅하고 있다. 미 경제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Fed는 7월 금리 인하의 불을 댕기지 않은 것을 후회할 수 있다"며 "금리 선물 시장이 올해 남은 회의 중 하나에서 0.5%포인트 인하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는 이유"라고 전했다.
미 경제 지표가 워낙 오락가락하니 침체 국면에 빠졌는지, 연착륙이 가능한지 단언하긴 어렵다. 하지만 시장이 우려하는 것 중 하나는 그동안 파월이 고집해 온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ent)' 기조다. 이는 통화정책에서 경제 지표를 중시하겠다는 것이다. 데이터는 물론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역할은 데이터 분석뿐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한 선제적인 통화정책으로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이란 두 가지 책무를 완수하는 것이다. 물가, 고용 시장 등 데이터를 토대로 추세를 파악하고, 확신까지 얻은 뒤 피벗(pivot·정책전환)에 나서면 적시 대응이 아닌, '뒷북 대응'이 될 위험을 배제하기 어렵다. 파월은 이미 2021년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이라고 오판해 2022년 3월 뒤늦게 금리 인상을 시작한 전력이 있다. 이번만큼은 파월이 아닌 'Fed의 7월 금리 동결이 오판, 9월 금리 인상이 뒷북'이 될 거란 월가의 판단이 오판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