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경기자
나는 '가장 전형적인 동네 산책'을 하겠다는 목표를 의식한 나머지 평소보다 자의식이 충만한 상태로 현관을 나섰다. 나 자신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한껏 즐기는 한편 스스로 몰랐던 신비로운 관찰력을 발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말이다. 어쨌든 나는 직업상 관찰을 하는 사람이다. 개를 관찰하는 기술은 내 행동을 관찰하는 데에도, 그리고 확신컨대 우리 동네를 관찰하는 데에도 적용할 수 있을 터였다. 친구들에게 달갑지 않은 지적을 할 때마다 '관찰력 한번 뛰어나다'는 말을 듣지 않았던가?
그래서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자신에게 그리고 이번 산책에 퍽 만족했다. 우리 동네에서 중요한 것은 전부 눈에 담아왔다고 자신했다. 나는 차 한 대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고 건물 하나하나에 눈길을 던졌다. 오늘 훑어본 가로수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행인들을 빤히 쳐다보았고, 용감무쌍한 다람쥐 녀석을 관찰했고, 털이 난 애벌레의 행동을 엿보았다. 이렇게나 의식적으로 온갖 것을 쳐다보았는데 무엇을 놓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앞으로 서술하겠지만 이 산책에는 이런저런 한계가 있었다. 알고 보니 나는 거의 모든 것을 놓치고 있었다. 다른 열한 명과의 산책들을 마친 뒤 나는 기분 좋은 탄성을 지르는 한편, 나의 평범한 시각의 한계를 깨닫고 코가 납작해지고 말았다. 그나마 위안거리가 있다면 나의 이런 부족함이 지극히 인간적인 특성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보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다. 우리는 눈을 사용하지만, 시선이 닿는 대상을 경박하게 판단하고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기호를 보지만 그 의미는 보지 못한다. 남이 우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즉, 내게 부족한 것은 집중력이었다. 그저 충분히 집중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그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아이들이라면 모두 선생님 또는 부모님으로부터 집중하라는 타이름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집중하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이토록 지적인 산책>, 박다솜 옮김, 라이온북스, 1만8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