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기자
OTT 경쟁 구도가 프로스포츠 중계로 요동친다. 절대강자 넷플릭스의 아성이 흔들릴 정도다.
태풍의 눈은 티빙과 쿠팡플레이. 전자는 2026년까지 3년간 한국 프로야구(KBO) 온라인 중계권을 독점한다. 투자 규모는 1350억 원으로, 연평균 450억 원이다. 네이버 등이 컨소시엄을 맺고 공동 계약한 지난 계약(5년간 1100억 원·연평균 220억 원)의 두 배를 초과한다. 후자는 내년까지 K리그 유무선 중계권을 확보했다. 계약 규모는 베일에 싸였으나 연평균 110억 원 규모로 알려졌다.
OTT는 그동안 오리지널 콘텐츠를 동력 삼아 성장했다. 예컨대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 디즈니+는 '무빙' 같은 킬러 콘텐츠로 구독자를 모았다. 같은 전략이 충돌하면서 품질 경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산업 전반이 위축될 만큼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2011년 평균 1억 원 수준이던 드라마 회당 제작비는 지난해 10억 원에 육박했다. 역량을 집중한 대작에는 수백억 원도 투입됐다. 디즈니+ '삼식이 삼촌(약 400억 원)'과 넷플릭스 '더 에이트 쇼(약 240억 원)'·'기생수: 더 그레이(약 200억 원)' 등이 대표적 예다.
갈수록 수익 개선을 요구받는 OTT에는 크나큰 부담이다. 고육책으로 계정 공유 제한과 구독 가격 인상을 강행했으나 이탈하는 구독자만 늘고 말았다. 비용을 절감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축소하기에 이르렀다.
프로스포츠는 빈틈을 메울 매력적인 콘텐츠다. 무엇보다 비용 대비 효율성이 높다. 투자 규모가 상당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오리지널 콘텐츠 한두 편을 제작하는 수준이다. 중계 인력과 해설진 구성을 제외하면 인건비도 거의 들지 않는다.
드라마나 예능은 같은 돈을 쓰고도 흥행을 장담하기 어렵다. '삼식이 삼촌'처럼 외면받는 경우도 흔하다. 반면 프로스포츠는 고정 시청층이 있어 위험성이 크지 않다. 관심이 지속되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긴 편이다. 드라마나 예능은 관심을 끌어도 효과가 길어야 두세 달 지속된다. 프로스포츠는 이보다 최소 두 배 이상 유지된다. 특히 프로야구는 리그가 봄부터 초겨울까지 8개월가량 이어져 '락 인 효과(Lock-in effect)'가 탁월하다.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가 무료 뉴스와 함께 내세워 궤도에 올랐을 정도다.
티빙도 대등한 성과를 거둘 태세다. 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평균 DAU(하루 동안 서비스를 경험한 이용자 수)는 197만 명이다. 국내 OTT 가운데 유일하게 7개월 연속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12월(130만 명)보다 무려 50.9% 증가했다.
가장 성장 폭이 두드러진 기간은 4월 첫 번째 주부터 5월 네 번째 주까지 약 두 달이다. 부동의 1위 넷플릭스와의 평일 DAU 격차가 72만 명(170만6266명/242만3537명)에서 24만 명(204만6407명/228만9954명)으로 감소했다. 총 사용 시간에서 격차는 더 줄었다. 지난해 12월은 7000만 시간(4432만1094시간/1억1500만시간)에 달했으나 지난 6월은 10분의 1 수준인 700만 시간(6526만7166시간/7321만6062시간)이었다.
드라마 '눈물의 여왕'·'선재 업고 튀어'와 하루 최대 다섯 경기가 열리는 프로야구 중계를 향한 관심이 맞물린 결과다. 티빙에 따르면 프로야구로 유입된 시청자 상당수는 '선재 업고 튀어', '피라미드 게임' 등 오리지널 콘텐츠도 시청했다. '최강야구' 등 야구 예능을 즐겨 보는 이도 많았다. 기존 핵심 타깃인 2030 여성을 넘어 스포츠 팬덤으로 구독자 저변이 확대되는 추세다.
티빙은 2030 여성을 프로야구로 끌어들이는 마중물에도 신경을 쓴다. 연예인들이 출연해 응원 대결을 벌이는 '찐팬구역'이 대표적 예다. 엔터테인먼트 성격을 가미해 접근성을 높인다. 한편으로는 40초 이내 쇼트 폼(짧은 분량의 영상) 제작과 송출을 허용해 디지털로 즐기는 야구 문화 형성에 일조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 등에서 경기 하이라이트, 관중석 스케치 등의 노출 빈도를 높여 화제가 되도록 유인한다. 실제로 열 구단과 KBO, 티빙 스포츠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3월 23일 173만 명에서 지난 14일 234만 명으로 61만 명 급증했다. 여기서 상당수는 2030 여성이다.
높아진 관심에 힘입어 올해 프로야구는 한 시즌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새로 썼다. KBO에 따르면 지난 9일까지 967만1340명을 동원했다. 올 시즌 평균 관중 수는 1만4879명. 우천 취소 등 변수가 없다면 1000만 관중 돌파가 유력시된다.
올 초까진 기대하지 못했던 성과다. 티빙이 중계권을 따내자 대다수가 유료 전환에 따른 접근성 저하를 불안 요소로 지적했다. 구단들조차 보편적 시청권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과 방송 시스템을 우려했다. 티빙은 쇼트 폼 활성화 등으로 위험 요소를 지우는 동시에 방송 시스템을 개선했다. 투구 트래킹 데이터(투구의 초속·종속·회전 방향 등) 적용, ABS 존 통과 여부 분석 등 각종 통계와 기술을 접목해 중계 질을 고도화했다. '멀티뷰(동 시간대 경기를 한 화면에서 시청)'·'티빙톡(단체 채팅)' 등 기능을 마련해 보는 재미도 더했다.
이 같은 역발상의 시초는 쿠팡플레이다. 2020년 후발주자로 합류하면서부터 스포츠 중계를 전면에 내세웠다. 고정 팬덤을 확보해 시청자 수를 일정 규모 이상 유지한다는 전략이었다. 가장 공을 들인 콘텐츠는 위상이 추락하던 K리그. 쿠팡플레이는 기존 중계 틀을 깨고 과감한 탈바꿈을 시도했다. 카메라 열일곱 대와 레이싱 드론 등 특수촬영기기로 선수들의 활약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엔터테인먼트 성격을 가미해 프리뷰 쇼 등을 진행했다. 굿즈 제작·판매 등 다양한 마케팅도 병행했다.
그 덕에 2021년 56만3448명에 불과했던 K리그 1·2부리그 유료 관중 수는 계약 첫해인 이듬해 140만208명으로 두 배 넘게 뛰었다. 지난해에는 300만 명도 넘었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1부리그의 경우 아흔한 경기 만에 100만 관중을 넘었다. 2013년 승강제를 도입한 뒤 가장 빠른 기록이다. OTT 업계 관계자는 "쿠팡플레이의 갖은 노력이 없었다면 K리그 흥행은 불가능했다"며 "OTT와 프로스포츠협회의 상생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프로스포츠가 OTT의 킬러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예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