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진법조전문기자
고(故)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져겼지만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전익수 전 공군 법무실장이 준장에서 대령으로 강등된 징계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양상윤)는 14일 전 전 실장이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취소 소송을 기각,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전 전 실장이 받는 4개 징계 혐의 ▲부작위를 통한 수리보고 형해화 방치 ▲강제추행 사건 관련 성실의무 위반 ▲군검사에 대한 면담 강요에 따른 품위유지의무 위반 등 3개를 인정한 반면 ▲군사법원법에 반하는 검찰부 운영 방치 혐의(제3 징계사유)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에게 제3 징계사유가 인정되지 않는 점과 장군에 대한 강등처분이 이례적이라는 점, 그 밖에 원고가 주장하는 사정들을 감안하더라도 이 사건 징계처분이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는 공군 법무실장으로서 다른 군인들보다도 높은 도덕성과 성실성을 갖춘 자세로 공직에 임할 것이 기대됨은 물론 군 내 주요한 범죄가 발생하는 경우 사건을 적시에 적정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군검찰 조직을 운영하고 군검사를 지휘·감독해야 할 최종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징계양정기준에 의할 때, 피고는 원칙적으로 원고에 대해 '파면·해임'보다 1단계 위의 징계로 의결할 수 있으나, 원고가 23년간 성실히 근무해 왔던 점이나 그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표창을 받은 점 등의 유리한 사정들도 함께 고려해 해임보다 낮은 강등처분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 전 실장은 공군 20전투비행단 소속이던 이예람 중사가 2021년 3월 2일 선임 부사관에게 성추행당한 뒤 같은 해 5월 21일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과정에서 부실 초동 수사의 책임자라는 의혹을 받았다.
전 전 실장은 2022년 11월 준장에서 대령으로 강등되는 징계를 받았다. 민주화 이후 장군이 강등된 첫 사례였다.
재판부는 전 전 실장이 보고지침에 따른 사건수리보고가 적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보고지침 준수를 지시·강조하거나 공군본부 고등검찰부장으로 하여금 이를 지시·강조하도록 지시했어야 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아 공무원법 제56조에 규정된 성실의무를 위반한 혐의가 인정된다고 봤다.
또 전 전 실장이 사건 발생을 인지한 뒤에 사건 담당 군검사와 검찰수사관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2021년 3월 8일 A 원사가 발송한 참고보고를 '단순 참고보고'로 봐 구체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2021년 5월 22일 이 중사가 사망할 때까지 군검사와 검찰수사관에게 수사에 대한 지휘·감독 등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음로써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직무를 유기해 성실의무를 위반한 점도 인정했다.
또 재판부는 전 전 실장이 2021년 7월 16일 지속적으로 본인과 양모씨의 형사사건 수사 또는 재판과 관련해 필요한 사실을 알고 있는 B 군검사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면담을 강요하거나 위력을 행사해 법령준수의무를 위반했다는 혐의에 대해 "원고에 대한 이 부분 징계사유에 적용된 법률규정이 명시돼 있지는 않으나 특정범죄가중법 제5조의9 4항으로 보이는데, 원고가 위력을 행사한 상대방은 B 군검사였음이 분명하므로, 설령 원고가 B 군검사에게 전화해서 했던 발언이 위력행사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이 사건 법률규정을 위반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특정범죄가중법 제5조의9(보복범죄의 가중처벌 등) 4항은 '자기 또는 타인의 형사사건의 수사 또는 재판과 관련하여 필요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 또는 그 친족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면담을 강요하거나 위력(威力)을 행사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러나 원고의 이 부분 행위는 국민의 수임자로서의 직책을 맡아 수행해 나가기에 손색이 없는 인품에 걸맞은 행위라고 볼 수 없고, 원고의 품위유지의무 위반을 인정할 수 있다"라며 "수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해하는 대단히 부적절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군검사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 공정한 직무수행을 그르치게 할 수 있는 행위로, 국민의 수임자로서의 직책을 맡아 수행해 나가기에 손색이 없는 인품에 걸맞은 행위라고도 볼 수 없으며, 오히려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킬 우려가 있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재판부는 전 전 실장이 '공군본부 법무실 편제 직능(임무 및 기능)'의 개정소요를 제기하고, 보통검찰부장이 본연의 임무에 집중해 원활한 공군 군검찰 운영이 가능하도록 조치해야 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아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는 세 번째 징계사유에 대해서는 "원고에게 상당한 기간 내에 공군본부 법무실 직제에 대한 개정소요를 제기해야할 구체적 조치의무가 발생했다고 할 수 없다"며 "원고에게 그와 같은 작위의무가 있다고 인정할 수 없으므로 이 부분 처분사유는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중사의 부친은 판결 후 기자들과 만나 "피해자와 억울한 유족들을 위해 정당하게 판결해줌으로써 정의와 상식이 있는 나라를 만들어줬다"라며 "정의와 공정과 상식에 가까이 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예"라고 말했다.
이 중사 사건 수사에 부당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형사재판 1심에서 전 전 실장은 지난해 6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전 전 실장에게 적용된 면담강요 혐의는 무죄로 보면서도 녹취까지 하며 수사 내용을 알아내려 했던 전 전 실장의 행위가 매우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전 전 실장은 징계취소 소송과 함께 징계 효력을 임시로 멈춰달라는 취지의 집행정지를 신청했는데, 법원이 일부 인용하면서 2022년 12월 준장으로 전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