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의미래]드러내고, 남겨두기…'재생 건축'의 미학

조병수 건축가의 대표작은
버려진 폐공장 전시장으로 재탄생
벽체·기둥 칠 없이 그대로 남겨둬
기존 마을과 공존하는 새 공간

편집자주'금단의 땅'을 품고 있던 용산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한 세기가 넘도록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됐던 용산미군기지는 국민 모두의 공간인 용산공원으로 탈바꿈했고 대통령실 이전으로 대한민국 권력의 새로운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며 개발 계획도 본격 시작됐다.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역할 확대 요구도 이어진다. 서울 한복판, 남산과 한강을 잇는 한강 변 '금싸라기 땅'임에도 낙후된 주거지를 여전히 품고 있는 문제도 있다. 서울이 권력과 기업,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도시로서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려면 용산에 주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선이다. 그런 의미에서 용산은 한국 도시의 현재이자 미래다.

조병수 건축가는 ‘재생 건축’의 대가이다. 오래되고 역사적인 것을 없애버리는 게 아니라, 새것과 함께 창의적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어우러지게 하는 개념의 건축이다.

온그라운드 갤러리. [사진출처=조병수건축연구소]

조 건축가는 미국 몬태나주립대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건축학 및 도시설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조병수건축연구소(BCHO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한 이후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세계 선도적 건축가 11인, 미국 건축가협회 최고상 등 국내외로 이름을 날렸다. 최근 건축, 예술 등 다방면으로 지속 가능성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그의 건축 방식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

성북동 스튜디오 주택. [사진출처=조병수건축연구소]

그가 1996년 한국으로 돌아와 직접 사용하기 위해 설계한 ‘성북동 스튜디오 주택’은 대표작으로 꼽힌다. 벽체와 기둥은 페인트칠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었고, 연탄아궁이가 있던 곳은 사무실로 바뀌었다. 재생 건축이라는 개념은 이후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 서촌의 유명 카페로 자리 잡은 ‘온그라운드 갤러리’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적산가옥을 활용한 공간이다. 대들보와 기둥을 유지하고 나무 널판 틈 사이로 자연스레 빛이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조 건축가는 건축을 시작할 때부터 재생 방식을 시도해 왔다. 그는 "대학원에서 작업을 할 당시에 재생 건축이라는 말이 없었다"며 "설계를 할 때마다 기존 건물을 허물지 않고 고쳐서 쓰니 교수님들이 싫어하시곤 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깨끗하고 반짝반짝한 건물보다는 낡고 허름한, 자연 그대로의 건물이 좋았다고 그는 설명했다.

재활용, 친환경 그 자체

부산 수영구에 위치한 F1963. [사진출처=조병수건축연구소]

재생 건축은 그가 특별히 의도하지 않아도 친환경 자체가 됐다. 조 건축가는 "‘친환경 건축’이라고 많이 만들곤 하는데, 사실 진정한 친환경 건축은 없는 것 같다"며 "건물을 새로 짓지 않고 보존하고 고치는 것, 재활용을 하는 방식이 더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2016 부산비엔날레’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조 건축가는 부산 수영구에 위치한 옛 고려제강 수영공장을 ‘F1963’이라는 복합미술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버려졌던 폐공장을 활용해 높은 천장과 철 기둥 등 공장 원형을 그대로 살려 공간 전체를 전시장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그는 "한 동네에서 몇십 년을 함께해온 마을의 일부가 무작위하게 없어지는 것보다는, 기존의 공간들과 공존하는 건물이 생겨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조병수 건축가가 23일 서울 서초구 건축연구소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사회부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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