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슈]'어음 6장'에 흔들리는 SK 지배구조…재무부담 더 커지나

노태우 비자금서 건네진 300억 어음
3심 확정대비 1조3800억 확보 비상
주가 변동성 심화…"재무부담 이미 커져"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최태원 SK 그룹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사상최대 규모 재산분할 판결이 나온 가운데 이번 판결의 핵심 쟁점이 된 과거 선경건설의 300억원 규모 약속어음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해당 어음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서 비롯된 것으로 법원은 해당 자금이 SK그룹의 전신인 선경그룹 성장의 밑거름으로 판단했다.

정치인의 비자금을 상속 가능한 사유재산으로 볼 것인지 여부에 논란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향후 경영권 분쟁 우려가 커진 SK 주가는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국내에서 매우 이례적인 대규모 재산분할 재판인만큼 3심에서 최종판결이 가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최종심 확정 전까지는 SK 주가가 계속해서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핵심쟁점 사안 떠오른 어음 300억…태평양증권 인수에 쓰였나

노태우 전 대통령.[이미지출처=연합뉴스]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지난달 30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에서 노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가 보관했던 1992년 12월16일자 선경건설(현 SK에코플랜트)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을 판결의 주요 증빙으로 인정했다. 노 전 대통령 비자금에서 나온 해당 어음이 SK그룹 전신인 선경그룹에 전해졌고, 이 자금이 오늘날 SK그룹 형성의 밑바탕이 됐다는 판단이다.

노 관장 측은 당시 해당 어음이 1992년 선경그룹의 태평양증권 인수에 쓰였다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도 자금의 용처를 구체적으로 특정하진 않았지만 "태평양증권 인수 당시 자금 출처가 불분명하다"며 사실상 노 관장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김 여사가 1998년 4월과 1999년 2월 각각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내역을 상세히 기록한 메모와 함께 어음 6장을 '선경 300'이란 이름의 소봉투 속에 보관해온 점 등을 증빙 사유로 밝혔다.

태평양증권은 1992년 선경그룹이 태평양화학그룹으로부터 인수한 증권사로 당시 업계 10위권의 증권사였다. 이동통신사업 분야 진출 발판을 위한 자금조달을 위해 선경그룹은 증권업에 뛰어들려던 시점이었다. 인수 당시 태평양증권 주식 283만주를 주당 2만200원, 총액 571억원에 장외매수했는데 자금출처를 명확히 밝히지 않아 논란이 있었다. 인수계약 주체도 선경그룹이 아닌 당시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 명의로 이뤄져 사돈관계인 노 전 대통령 측의 자금지원이 있었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최 회장 측은 "노 전 대통령이 뇌물로 받은 비자금 300억원을 맡겨뒀다는 노 관장 측 주장을 인정하는 건 부친의 반사회질서적 범죄행위로 얻은 수익을 딸이 찾아가는 것을 용인하는 결과"라며 "이는 불법원인 급여의 반환을 불허하는 민법 746조에 반한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1991년 당시 300억원 금전 지원이 형사상 어떤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았고, 이후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도 않았다"며 노 관장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따라 이혼소송 1심에서는 최 회장의 특유재산으로 인정됐던 SK 및 계열사 보유 지분 등 약 4조원 규모의 재산이 모두 분할 대상으로 인정됐고, 최 회장은 재산분할금 1조3808억원과 위자료 20억원을 노 관장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재산분할 위한 자금확보 비상…최 회장 지분 상당수 담보대출

최태원 SK그룹 회장 보유 SK 지분 계약내용.[이미지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3심에서 만약에 2심의 재산분할 판결 내용이 확정되거나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경우 최 회장 측은 노 관장 측에 지급해야할 자금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의 상당수가 담보대출 계약이 걸려있는 상태라 추가로 담보대출을 받거나 다른 계열사 지분 매각이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 17.73% 중 담보대출과 질권설정 등으로 계약이 체결돼있는 지분은 10.24%에 이른다. 해당 지분을 제외한 7% 가량 지분 전체를 매각한다고 해도 현재 12조원 안팎에 형성된 SK의 시가총액을 고려하면 84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SK 지분과 함께 최 회장의 주요 자산으로 알려진 비상장 계열사 SK실트론 지분 매각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 회장은 2017년 SK가 LG로부터 SK실트론을 인수할 당시 총수익스와프(TRS) 방식으로 29.4% 지분 인수에 참여했다. 해당 지분의 현재 가치는 약 6000억~8000억원대로 추정된다.

TRS는 자산을 직접 매입할 수 없는 투자자를 대신해 증권사가 자산을 매입하는 계약으로 투자자는 자산가격 변동에 따른 이익을 취하는 대신 증권사나 특수목적회사(SPC)에 수수료를 내는 투자방식이다. 최 회장은 TRS 계약 당시 SPC에 보유 중이던 SK 지분 4.33%를 질권으로 설정했고 SPC는 해당 주식을 담보로 SK실트론 지분을 대리매입했다. 해당 지분을 매각해 재산분할 지급에 사용하려면 질권설정을 먼저 해제해야하는 상황이다.

매각을 한 뒤에도 주식양도 차익에 대한 세금을 내야한다. 현행법상 대주주는 3억원 이상 주식양도 차익에 대해 27.5%의 세금을 납부해야한다. 만약 8000억원에 지분을 매각했다면 2200억원 이상을 세금으로 납부해야하는 것이다.

이미 재무부담 커진 SK…주가 등락 심화

최 회장의 재산분할 이후 SK의 지배구조에 변동이 생길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SK의 주가도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2심 재판 선고일을 전후로 SK의 주가는 14만4700원에서 이달 3일에는 17만8800원까지 단기간에 23.56% 상승했다가 다시 16만원대로 하락했다.

일부 증권사들은 재산분할 문제를 직접적인 리스크로 지목하진 않았지만 SK의 목표가를 낮췄다. 이미 SK 그룹이 지난해까지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면서 계열사가 크게 늘어나 차입금이 늘면서 재무부담이 커진만큼 앞으로 주가 변동성이 계속 제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DS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SK 목표주가를 26만원에서 20만원으로 하향했다. 김수현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에 SK의 투자 실적에 대한 우려가 다수 존재한다"며 "그룹의 재무 부담이 높아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BNK투자증권도 SK 목표주가를 23만원에서 21만으로 하향조정했다. 김장원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SK그룹은 2차전지와 바이오 사업에 구조조정 필요성을 느끼는 듯 하지만 중간지주회사가 유독 많은 지배구조로 큰 변화가 어려울 것"이라며 "지주사의 재무적 부담과 기업가치 분산화로 상승모멘텀이 약하다"고 평가했다.

기획취재부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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