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가 시내 사무실 70% 매입'…몰락의 디트로이트 살리는 부자들

20세기 미 제조업 상징서 파산까지 간 도시
작년에 1957년 이후 첫 인구 증가해 '깜짝'
디트로이트 출신 자본가·기업 나서서 투자
기업 유치하고 인프라 구축 등 노력

'20세기 미국 제조업의 상징'에서 낙후한 러스트 벨트로 전락해 '몰락의 상징'으로 변모했던 디트로이트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가로등을 켜지 못할 정도로 재정이 어려웠고 범죄가 난무했던 디트로이트에 억만장자와 기업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면서 도시를 되살리고 있는 모습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해 디트로이트 인구가 1957년 이후 60여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했다면서 디트로이트가 살아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디트로이트 인구는 2022년 7월부터 1년 새 1852명 늘어 총 63만3218명으로 집계됐다. 디트로이트는 20세기에만 해도 자동차 산업을 바탕으로 미국 경제를 이끈 주요 도시였지만 연비 좋은 일본 차와 값싼 중국 노동력 등에 밀려 21세기에 몰락했고 2013년에는 시가 파산을 신청할 정도로 무너졌다.

디트로이트를 살려내는 존재는 억만장자인 댄 길버트와 미국의 대표 자동차 제조업체 포드, 피자 체인을 운영하는 일리치 가문이다. 미국 억만장자이자 금융 기관인 로켓모기지의 창업자인 길버트는 디트로이트 출신이고, 포드와 일리치 가문은 디트로이트에 본사를 두고 있다. 디트로이트가 기반인 자본가와 기업이 일종의 도시 재건 연합 세력을 형성한 셈이다.

블룸버그는 "이들이 디트로이트에 투자한 규모만 수십억달러에 달한다"며 "길버트와 포드, 일리치 가문이 디트로이트 시내 사무실 70%를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사무실을 디트로이트 외곽에서 시내로 이전하면서 사무실 공간은 서서히 근로자로 채워질 전망이다.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끌어모은 '디트로이트 출신' 억만장자

디트로이트 살리기에 가장 먼저 나선 인물은 길버트였다. 2007년 디트로이트 외곽 도시인 리보니아에 회사 본사를 둔 길버트는 당시 직원들과 회의 끝에 디트로이트 시내 이전을 결정했다. 디트로이트 시내는 경찰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가로등이나 제설 시설 등이 갖춰지지 않을 정도로 볼품없이 망가져 있었지만, 길버트는 2010년 사무실 공간을 확보해 직원 1500명과 함께 이동했다.

미국 디트로이트 출신의 억만장자인 댄 길버트

길버트는 이 무렵 디트로이트 부동산을 하나씩 사들였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를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는데, 대부분 사무실이 비어 있거나 리모델링이 필요한 상황이라 저렴하게 사들였다는 것이 길버트의 설명이다. 다만 값은 저렴해도 도시의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아 금융기관에서 부동산을 매입할 때 대출을 내어줄 수 없다고 해 길버트가 현금으로 구매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현재 길버트는 디트로이트 시내에 부동산 131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90%가 임대 중이며 34%는 본인 소유 회사 사무실로 사용해 직원 2만명이 근무 중이다. 길버트는 디트로이트 외곽에 기반을 둔 자동차 제조업체 제너럴모터스(GM)가 디트로이트 시내로 일부 이전하도록 설득하기도 했다.

길버트는 "우리가 시내로 들어오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따라 들어오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며 "(현재) 디트로이트는 이전에는 없었던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포드, 노숙자 가득하던 기차역 완전 리모델링…인프라 ↑

길버트의 이러한 행보에 주목한 또 다른 억만장자가 있었다. 디트로이트 출신으로 뉴욕에서 대성공을 거둔 부동산 재벌 스테픈 로스였다. 뉴욕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그에게 디트로이트는 항상 도움을 요청해왔지만, 로스는 "아직 때가 이르다"라며 거절해왔다.

길버트가 디트로이트 재건에 나선 지 약 10년쯤 된 2019년에서야 로스는 투자 리스크가 비교적 덜하다고 느끼게 됐고 처음 디트로이트 투자에 나서기 시작했다. 인재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미시건대 혁신 센터 건설을 위한 공간 마련을 위해 길버트와 처음으로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협약 직후 길버트가 건강 문제로 투자에서 빠지면서 차질이 빚어지자 로스가 이 지역에 기반을 둔 일리치 가문을 찾아갔다. 평소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관심이 있었던 일리치 가문이 로스와 함께 디트로이트 시내에 야구장, 농구장 등을 지었다. 이를 기반으로 다른 자본가들도 관심을 보이며 추가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포드가 개조한 미시간 중앙역의 모습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동시에 디트로이트의 핵심 기업인 포드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도시 재건에 집중하고 있다. 포드는 디트로이트 내 구시가지인 코크타운에 있는 미시간 중앙역을 인수, 이를 개조해 식당가와 사무실 등으로 바꿨다. 창문과 건물 외벽이 부서져 낡은 데다 노숙자들이 가득해 몰락의 상징처럼 보였던 건물을 완전히 새 건물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 건물에는 포드와 알파벳, 구글 등 직원들이 근무하는 공간이 될 예정이다.

다만 디트로이트가 20세기에 누렸던 '부흥기'를 다시 찾았다고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 빈곤율이 미 전역 평균의 3배 수준인 30%에 달하고 실업률도 4월 중 증가했으며 범죄율도 이전에 비해선 다소 낮아졌지만, 미국 최고 수준이다. 이로 인해 디트로이트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개선되진 않은 상황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부동산 투자 업체인 컬리어스의 랜달 북 부회장은 "디트로이트의 중요한 시점에 있다"며 "지역 투자자 3~4명이 도시를 살리고자 투자를 쏟아부었지만 다른 기업을 추가로 유치하려면 지역 사회와 교육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획취재부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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