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민기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30일 "지금은 기득권의 벽을 깨고 정치신인과 청년들에게 현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지구당을 부활하는 것이 ‘정치개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지구당이 부활하면 '차떼기'가 횡행했던 20년 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우려하자 직접 반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전 위원장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차떼기가 만연했던 20년 전에는 지구당 폐지가 정치개혁이었다"며 이같이 글을 남겼다. 한 전 위원장은 또 지구당 부활에 대해 "정치영역에서의 '격차 해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우리 국민의힘이 총선 과정에서 국민들께 약속했던 특권 폐지 정치개혁 과제들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으면 국민들께서는 지구당 부활을 국민을 위한 정치개혁이 아니라 정치인들끼리의 뻔한 흥정으로 생각하실 것 같다"고 부연했다.
국민의힘의 지구당 부활론은 한 전 위원장이 최근 총선 당선인·낙선인을 만난 자리에서 지구당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촉발됐다. 원외에 있는 신인 정치인들이 정치자금을 모으고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려면 지구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도 지난 23일 부산에서 열린 민주당 당원 콘퍼런스 행사에서 지구당 부활론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국민의힘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윤상현·나경원 의원도 지구당 부활론에 의견을 보탰다. 윤 의원은 전날 SNS에 "'깨끗한 정치, 투명한 정치, 돈 덜 쓰는 정치'는 가능하지만, 아예 '돈을 안 쓰는 정치'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며 "지구당과 지구당 후원회 부활은 깨끗한 정치를 공평하게 실천하고 풀뿌리 민주주의와 정당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새로운 정치개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나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지구당 부활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저도 원외위원장을 4년 해보니 정치 자금 모금이 문제다. 원내 의원들은 정치 자금을 모금할 수 있고, 원외는 못 한다"고 밝혔다.
최재형 전 의원도 이날 MBC라디오에서 "저도 원외 당협위원장이 됐는데, 활동 여지가 너무 적다. 탈법을 조장할 수 있다"며 "지금과 같이 원외 당협위원장의 활동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제도는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원외조직위원장들도 이날 성명을 내고 "여야가 합심해 즉각 입법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여야는 각각 지구당 부활에 대한 법안을 이날 제출할 예정이다. 윤 의원은 이날 지구당 부활을 담은 '지역정치 활성화법'을 발의할 예정이며, 민주당에선 김영배 의원이 1호 법안으로 지구당 부활 내용을 담은 '정당법 개정안'을 이날 제출할 방침이다.
반면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구당 부활은 한국 정치를 20년 전으로 후퇴하는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전날 서울 영등포구 공군호텔에서 열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정기세미나에서 강연 후 기자들을 만나 "지구당 부활에 반대한다"며 "(지구당 폐지는) 정치 개혁의 일환이고, 부패 정치를 타파하기 위한 일환으로 한 것이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원외위원장 표심을 노리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