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주기자
국내 해상 풍력은 태양광 산업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태양광 산업은 중국에 의해 잠식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중국이 시장을 선점하면 국내 기업은 생태계 조성에 필요한 기술과 경험을 축적할 기회를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2년여 전만 해도 한국과 중국의 태양광 기술 수준은 엇비슷했으나 지금은 원자재 기술부터 셀, 모듈 기술까지 모두 중국이 한국을 앞서고 있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중국은 태양광 분야 절대 강자로 꼽힌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에 따르면 세계 태양광 상위 10개 회사 중 8개가 중국 기업이며, 1위 통웨이부터 5위 진코까지 모두 중국 회사다.
중국은 연구개발(R&D)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세계 4위 태양광 모듈제조업체인 론지솔라의 연간 R&D 비용은 1조3000억원이다. 우리 정부의 신재생에너지핵심기술개발사업 예산(3217억원)의 4배가 넘는다.
국내 태양광 기업들 상당수는 이미 태양광 사업을 철수하거나 축소하고 있다. SKC는 2020년 태양광 모듈을 보호하는 에틸렌 비닐아세테이트(EVA) 시트 사업을 중단했으며, 폴리실리콘 대표 기업인 OCI도 2020년 폴리실리콘 국내 생산을 중단했다. 한화솔루션 역시 과거 케미칼 부문에서 생산하던 폴리실리콘 생산을 같은 해 중단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잉곳·웨이퍼를 생산해 온 웅진에너지는 지난 2022년 7월 최종 파산 선고를 받았다. 셀·모듈 사업을 하던 LG전자도 2022년 사업을 접었다.
하지만 해상 풍력 산업은 태양광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는 평가다. 고용노동부가 구성한 산업별 인적자원개발위원회(ISC)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풍력 기술 수준은 선진국 대비 74%에 불과하다. 블레이드, 발전기, 변환기의 국산화율은 34%이다. 기술과 가격 수준은 선진국 대비 60%다.
ISC는 "2000년대 중반부터 주요 부품들에 대한 꾸준한 국산화 개발이 진행돼왔으나, 협소한 국내 시장과 이로 인한 단가 경쟁력 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다수의 부품들이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기업들이 그나마 경쟁력을 갖춘 부문은 풍력발전기를 지탱해줄 해상풍력 구조물이다. 수십년간 조선업 강국의 지위를 지키며 해양플랜트 제작 경험을 쌓은 게 도움이 됐다. 조선소의 구조 변경이나 대규모 설비 투자 없이 대형 구조물을 즉시 제작할 수 있다는 점도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조선업뿐 아니라 철강사들도 해상 풍력 발전의 핵심 소재인 특수 강재 개발에 성과를 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전기를 만드는 핵심부품인 터빈이다. 여느 재생에너지와 마찬가지로 해상 풍력 역시 발전단가가 높은 게 문제다. 터빈은 설비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기 때문에 비용을 낮추기 위해선 터빈을 대형화하는 게 관건이다. 가령 100MW를 생산하기 위해 2MW짜리 50개를 설치하는 것보다 10MW짜리 10개를 설치하는 게 훨씬 낫다.
하지만 국산 터빈은 기술 격차를 따라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터빈은 우리 기술 수준이 해외보다 최소 4~5년 정도 늦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세계 1위 베스타스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은 15MW(메가와트) 수준의 초대형 풍력터빈 기술을 갖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은 이제 10MW 터빈 개발을 시작한 상태다. 정부 주도로 지난 2022년 15MW 이상 풍력터빈 기술 개발 사업을 추진하려 했으나 당시만 해도 풍력 발전의 비중이 워낙 낮다 보니 수익화가 어렵다는 이유로 기업들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한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연간 제작할 수 있는 터빈이 60기, 하부구조물이 135기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해상 풍력발전기를 설치할 수 있는 배와 항만이 없다. 15MW 터빈을 설치한다고 해도 연간 160개의 발전기를 설치해야 한다
해상풍력전용설치선박(WTIV)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운용 중인 WTIV는 현대스틸산업이 보유한 8MW급 1척이 유일하며, 10MW급 이상 터빈을 설치할 수 있는 WTIV가 필요하면 가까운 중국에서 용선해 사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국과 중국의 해상 풍력 격차는 설치량에서부터 극명하게 드러난다. 2022년 기준 국내 해상풍력발전단지의 누적 설치량은 124.5㎿(0.1245GW)로 중국(30.5GW)의 0.4%에 불과하다. 중국의 성장세는 아주 가파르다. 중국에서 2021년 새로 깔린 해상 풍력발전기 규모는 총 16.9GW로 유럽 3.3GW보다 5배나 많았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반도체, 태양광에서 그랬듯 중국 풍력 발전도 내수 시장과 정부의 전폭적 지원 속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이 중국 기업들과 기술 격차를 줄이고 독자적인 기술을 확보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