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진법조전문기자
지난 2022년 6월 실시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예비후보자에게 선거 브로커의 부당한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권유한 전직 언론인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확정받았다.
17일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공직선거법 위반(매수 및 이해유도) 혐의로 기소된 전직 일간지 기자 김모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김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공직선거법 제230조 3항, 제135조 3항에서 정한 ‘권유’의 해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된 확장해석금지 및 유추해석금지의 원칙을 위반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공직선거법 제230조(매수 및 이해유도죄)는 1항과 2항에서 선거인이나 후보자 또는 예비후보자의 선거캠프 관계자 등에게 금전이나 재산상 이익 등을 제공하거나 제공의 의사표시를 한자를 처벌하도로 정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조 3항은 그 같은 행위를 ‘지시·권유·요구하거나 알선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이다.
공직선거법 제135조(선거사무관계자에 대한 수당과 실비보상) 3항은 공직선거법 규정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명목여하를 불문하고 선거운동과 관련해 금품 기타 이익의 제공 또는 그 제공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그 제공의 약속·지시·권유·알선·요구 또는 수령할 수 없도록 정한 조항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권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전북의 한 지역일간지 정치부 기자(부국장)로 재직했던 김씨는 2021년 10월 전주시장 출마를 선언한 당시 이중선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에게 평소 친분이 있던 선거 브로커들의 금품 및 이익 제공 제안을 받아들일 것을 권유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건은 2022년 4월 7일 이 전 예비후보가 사퇴하면서 브로커들의 대화가 담긴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선거 브로커들은 이 전 예비후보에게 금품 등 제공을 약속하면서 당선 시 인사권과 사업 인허가권권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브로커 2명은 전 시민단체 대표이자 주택관리 업체 대표 A씨와 전 주택관리 업체 부사장 B씨였는데 이들은 이 전 예비후보에게 "내가 기업체들로부터 돈을 받아와 조직을 운영하는 데 쓰겠다"라며 "네가 시장에 당선되면 해당 업체에 사업권을 달라"고 요구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B씨는 이 전 예비후보에게 "전주시에는 35개 동이 설치돼 있어 각 동 책임자 6~7명씩, 총 200여명의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며 "이들에게 한 달에 50만원씩 돈을 계속 주면 선거에 이길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B씨는 이 전 예비후보가 이 같은 요구를 거부하자 "A씨는 선거의 귀재다. 네가 제안을 거절해서 돕지 않는 것"이라며 "전주시에 건설·토목 관련 국·과장 자리가 120개가 넘는데 거기에서 5, 6개를 왜 못 주느냐"고 말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지난해 1월 항소심에서 각각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상고를 취하해 판결이 확정됐다.
당시 이 전 예비후보는 선거 브로커와의 제안을 거부했지만, 김씨는 이 전 예비후보를 찾아가 "각서 써줄 것도 아닌데, 왜 ‘당선시켜주고 그 때 가서 봅시다’ 정도의 말도 못하느냐", "베팅하는 사람들은 10억, 몇 억씩 베팅하는데 너는 말로만 끝나느냐", "그 사람 돈 받고 탈 난 사람 없다"라는 등 얘기를 하며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권유한 혐의를 받았다.
1심 법원은 김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에서 김씨 측은 김씨가 이 전 예비후보에게 위와 같은 발언을 한 것은 고교동문이자 동향 친구인 이 전 예비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전 예비후보자의 판단에 도움을 주고자 일회적, 소극적으로 김씨의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조언’에 불과하지, 이 전 예비후보에게 브로커들에게 이익을 제공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의 발언은 피고인이 이 전 예비후보의 친구로서 의례적·사교적 차원에서 이 전 예비후보의 판단에 도움을 주고자 조언을 한 것에 불과하다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전주시장 예비후보자인 이 전 예비후보로 하여금 그간 다수의 선거에서 선거캠프에 관여해 권리당원 확보, 선거구민에 대한 홍보, 선거전략 제공 등의 선거운동을 해 온 브로커에게 선거운동과 관련해 금품 등 이익을 제공하도록 마음먹게끔 하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서 이익 제공 권유에 해당한다고 인정된다”라며 김씨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김씨는 이 후보를 만나서 비로소 그 같은 제안 사실을 듣게 돼 이야기했을 뿐이지 제안 수용을 권유하러 간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김씨가 이 전 예비후보가 ‘선거 자금을 댈 테니 시장에 당선되면 건설업 인허가와 관련된 인사권과 사업권을 달라’는 선거 브로커의 제안을 거절한 것을 알고 찾아가 제안 수용을 권유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지인과 대화하며 '버르장머리를 고치지 않고서는 시장이 되면 안 된다', '누가 시장을 만들어주는데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 점 등을 근거로 김씨에게 설득·권유의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항소했지만 2심 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불법 선거자금을 이용해 선거를 치르는 행위에 거부감이 없는 태도를 보인다"라며 "선거의 공정을 해하고 불법적인 이권을 조장해 민주정치 신뢰를 저해하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은 공정한 선거문화 정착을 위해 공적 책임을 진 언론인으로서 자질이 의심스럽다"며 "20여년간 언론인으로서 모범적 생활을 했다고 주장하나, 구태의연하고 왜곡된 정보력을 선거에 이용한 점에 비춰 원심판결은 합당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이 같은 하급심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