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주상돈기자
정부가 불공정무역행위 조사 시 영업비밀이라도 법정 대리인에 한해 열람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 최근 영업비밀 정보가 특허침해 판단의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피해기업의 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다.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 관계자는 "불공정무역행위를 조사할 때 '대리인 한정 열람제도'를 도입하는 법령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17일 밝혔다.
1987년 설립된 무역위는 덤핑 또는 지식재산권(IP) 침해와 같은 불공정무역행위로부터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공정한 무역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덤핑방지관세와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불공정무역행위 조사 등의 무역구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불공정무역행위 조사는 IP 침해와 원산지표시 위반 물품 수출입 등 불공정한 무역행위를 조사하고 위반업체를 제재해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제도다.
무역위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으로 누적 405건의 불공정행위 조사신청 중 IP 침해가 262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IP 침해 중에서는 상표권 침해가 125건, 특허권 침해가 87건으로 특히 많았다.
무역위 관계자는 "과거에는 특허를 침해해 만든 제품이 시중에 유통되면 제품을 수거해 침해 여부를 판단했지만 최근엔 생산방법과 생산공정 등을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영업비밀인 탓에 지금까지는 무역위만 이를 확인하고 침해 여부를 판단했는데, 앞으로는 피해기업의 대리인, 즉 변호사도 침해 의심 기업의 영업비밀을 볼 수 있도록 불공정무역조사법령상에 '대리인 한정 열람제도'를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리인 한정 열람제도는 이미 공정거래위원회가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공정위는 예규인 '자료의 열람·복사 업무지침'을 통해 영업비밀의 경우 열람·복사를 제한하고 있다. 다만 피심인의 대리인이 제한적 열람을 신청하는 경우 시간과 장소, 방법 등을 정해 영업비밀을 열람할 수 있다. 이때 열람자는 '비밀유지 서약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무역위는 대리인 한정 열람제도 시행 시 우려되는 영업비밀 노출을 막기 위해 공정위의 예규와 달리 비밀유지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불공정무역조사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영업비밀을 열람한 대리인은 누구에게도 이를 공개하거나 누설해서는 안 된다. 이를 어길 경우 처벌된다.
이를 위해 산업부는 최근 '불공정무역행위조사 관련 규정 개정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올해 10월까지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대리인 한정 열람제도 관련 법령 개정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기업 조사 신청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대리인 선임이 어려운 중소기업 등이 조사 신청서를 작성할 때 표준화된 샘플이 없어 작성에 애로 호소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불공정무역행위 유형별(IP·원산지·허위 과장 광고 등) 조사 사례 분석을 통한 표준화된 조사신청서도 수정·보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