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월드+]미·일·필리핀, 3국 정상회담과 한국의 고민

백악관서 3국 첫 정상회담
필리핀 영해 침범에 공동대응
소규모 안보협력으로 中 포위
자위대·주일 미군 영역 넓혀
日 오커스 가입 등 역할 확대
韓 외교안보 시야 넓혀 대응을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글로벌 법률·정책)

4월11일 미국, 일본, 필리핀 3국 정상은 미국 백악관에서 공동 정상회담을 했다. 4월10일 있었던 미·일 정상회담에 뒤이어 미국·필리핀 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다시 3국 정상회담이 개최된 것이다. 3국 정상회담의 가장 큰 이유는 필리핀이 서필리핀해라 부르고 중국은 남중국해로 부르는 해역에서의 필리핀과 중국 양국의 충돌에서 미·일 양국이 필리핀을 지지한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국제 해양법과 무관하게 남중국해 대부분이 자신의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이와 같은 주장은 장개석 국민당 정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오랫동안 해군력의 열세로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1990년대 필리핀 수빅만에 주둔하던 미 해군이 필리핀 정부의 요구로 철수하면서 중국은 실력행사에 나섰다. 중국군이 필리핀이 자국의 영토로 간주하던 미스치프 암초를 점거한 것이다. 당연히 필리핀 정부는 거세게 항의했지만 중국은 1994년부터 암초에 구조물 건설을 시작하면서 자국 영토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고, 2014년부터는 매립작업을 본격화하면서 2650m 길이의 활주로를 포함한 레이더, 미사일 등을 배치하여 군사기지화 작업을 마쳤다. 필리핀 정부는 중국의 점거에 대응하기 위해 1999년 미스치프 암초 인근에 있는 세컨드 토마스 사주에 상륙함을 좌초시켜 필리핀 해병대가 머물 수 있는 해상 기지로 삼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오른쪽),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과 3국 정상회의를 하기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양측의 영유권 주장이 대립하긴 했지만 비교적 평온하던 이 지역은 2014년 이후 양국의 격렬한 충돌 현장이 되고 있다. 중국 해경과 해상 민병대가 세컨드 토마스 사주로 향하는 필리핀군의 보급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측이 필리핀 해안경비대 함정을 가로막아 고립시키고 뒤따르는 보급함을 물대포로 공격하는 방식으로 보급을 저지하고 있다. 중국의 물대포 공격 과정에서 필리핀 보급함이 파손되고 부상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필리핀이 기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보급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미사일이 등장하지 않을 뿐 양측은 매번 전쟁 같은 격렬한 충돌을 빚고 있다. 당연히 중국의 전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필리핀으로서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6년 국제중재재판소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주장하는 구단선이 법적 근거가 없으며 중국이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다고 판결했지만 중국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위기에 몰린 필리핀으로서는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최근 미국과의 관계 복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과 필리핀은 1951년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지만 1990년대 이후 필리핀의 민족주의 흐름이 강화되면서 양국 간의 군사협력은 약화했다. 특히 공개적으로 친중 노선을 표방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취임은 결정적이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미국과의 경제적·군사적 결별을 주장하면서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공동 자원탐사 및 일대일로 참여를 발표하는 등 친중국 움직임을 노골화했다. 하지만 중국의 잇단 필리핀 영해 침범에 국민적 반감이 높아지자 뒤늦게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으며, 두테르테에 이어 대통령에 취임한 봉봉 마르코스 대통령은 미국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게 되었다.

미국과 필리핀 양측은 2023년 1만7000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했으며, 필리핀은 자국 군사기지 4곳을 미군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2023년 8월에는 미국 국방부 장관이 미·필리핀 상호방위조약은 남중국해를 포함한 태평양 전 지역에서 필리핀의 선박·항공기 등에 모두 적용된다고 확인하면서 미국의 필리핀 지지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개최된 미국, 일본, 필리핀 3국 정상회담은 남중국해에서의 3국 동맹으로 중국을 견제할 것임을 명확히 한 셈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중국의 해양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직접적인 대결과 병행하여 동맹국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유럽과 같은 대규모 안보공동체 구성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2~3개국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다수의 소규모 안보협력체를 연쇄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이다. 2021년 영국과 호주의 참여로 시작된 오커스(AUKUS)를 시작으로 호주, 일본 및 인도가 참여하는 쿼드(QUAD)를 구성했으며, 2023년에는 캠프 데이비드 회담을 통해 한·미·일 3국 간의 군사협력 강화를 공식화하였는데 이번에 남중국해 지역에서 일본과 필리핀으로 구성된 소규모 안보협력체계를 다시 구성함으로써 해양에서의 중국 포위망을 강화하였다.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자위대와 주일 미군 간의 상호 운용성 강화를 밝혔는데 그 주요 활동 무대는 남중국해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 해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바다를 지배해왔지만 최근 중국과의 경쟁에서는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조선 능력의 절반을 보유한 중국의 산업생산력에 미국이 밀리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자국 전투함이 일본 내 조선소에서 정비·수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최근 정상회담에서는 일본을 오커스의 필라 2 회원국으로 가입시키는 절차를 시작할 것을 밝히기도 했다.

우리로서는 이와 같은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에 국한된 우리의 안보 및 외교의 시야를 최소한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해야 하며, 보다 적극적인 군사적 협력과 활동에 나서야 한다. 주도적으로 지역 현안에 적절히 개입하면서 미국이 모두 할 수 없는 일을 챙기고 돕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일본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및 적대감을 청산하고 본격적인 동맹으로서의 상호 역할 분담을 논의하여야 할 것이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글로벌 법률·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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