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서는 4·10 총선 결과가 야당 압승, 여당 참패로 나온 데 대해 대법관·헌법재판관 임명 절차 등이 정쟁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양대 사법기관의 최고위 법관 구성은 물론 사법부 예산 편성 등에도 여야 합의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헌재·대법원 구성-예산 편성 난망
12일 대법원은 8월에 퇴임하는 김선수(63·사법연수원 17기)·이동원(61·17기)·노정희(61·19기) 대법관의 후임자 선정 절차에 착수했다. 김선수·이동원·노정희 대법관은 문재인(71·12기)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들로, 김명수(65·15기) 전 대법원장이 제청했다. 올해 12월에는 김상환(58·20기) 대법관도 퇴임한다.
윤석열(64·23기) 대통령이 후임자들을 임명하면 오석준(61·19기)·서경환(57·21기)·권영준(53·25기)·엄상필(58·23기)·신숙희(55·25기) 대법관에 더해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대법관은 9명이 된다.
하지만 지난해 김명수 전 대법원장 후임 인선 과정에서 이균용(62·16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야당의 반대로 본회의 표결에서 낙마한 점 등을 감안하면 ‘여소야대’ 구도의 정치 지형에서는 대법관 인선에도 야당의 입김이 어느 정도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총선 결과는 위헌·탄핵·권한쟁의 등의 심판권을 가진 헌법재판소 구성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9명의 헌법재판관 중 이종석(63·15기) 헌법재판소장을 포함한 4명의 임기가 올 9, 10월 끝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은애(58·19기) 재판관의 임기는 9월20일 만료된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이종석 소장을 비롯해 이영진(63·22·바른미래당 추천)·김기영(56·22기·더불어민주당 추천) 재판관의 임기도 10월 17일 끝난다.
현재 헌법재판관은 진보 성향 6명과 보수 성향 3명으로 구성돼 있다. 9월 보수 성향의 조희대(67·13기) 대법원장이 이은애 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하면 진보 5명 대 보수 4명으로 다소 균형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10월에는 국회 선출 몫 3명의 재판관이 동시에 교체돼 또 다른 변화가 예상된다. 국회 선출로 임명되는 재판관 3명은 여야가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1명은 여야 합의로 추천이 이뤄진다.
2018년 2월 합당을 통해 원내교섭단체가 된 바른미래당이 국회 선출권을 가져간 것처럼 총선 후 조국혁신당이 향후 합당 등을 통해 원내교섭단체가 된다면 헌법재판관 추천권을 얻어 ‘진보 5명 대 보수 4명’에서 ‘진보 6명 대 보수 3명’으로 다시 바뀔 수 있다. 수도권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올 하반기 연이어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임기가 만료되는데 청문회 과정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헐뜯기식 절차가 진행될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며 “제때 임명되지 않으면 공석 사태가 생겨 결국 재판 지연으로 이어져 사법 기능을 마비시키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총선 결과가 사법부 예산 편성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쟁이 심화되면 사법부 예산에 무관심해지거나 예산 증원이 쉽지 않은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관리자급 경험이 없는 고등부장 이하 판사 출신 의원들은 법원에 대한 애정보다는 공격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수사 위축 우려”… 로스쿨 출신 약진
검찰 내부는 검사 탄핵이나 특검법 발의 등 집중포화가 쏟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야당에서 검찰에 비판적인 법조인 출신 당선자들이 다수 배출됨에 따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공세 수위가 더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도 감지된다. 조국혁신당은 1호 공약으로 검찰청의 기소청 전환을 내세웠다. 수도권의 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야권에서 자꾸 검찰을 심판한다고 하니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라며 “당분간 몸을 사리자는 말도 나온다”며 수사 위축을 우려했다. 또 다른 부장검사는 “내부에서는 이러다 검찰이 없어지는 거 아니냐는 걱정도 있는 반면 국민들이 그렇게까지 검찰을 미워하겠냐고 나이브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로스쿨 출신 젊은 국회의원들에게 기대를 거는 목소리도 있었다. 박종명 서브텍스트 공공정책연구소 대표는 “법조인들은 기본적으로 상대를 신문하는 일방적 소통 방식에 익숙하고 법의 틀 안에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로스쿨 출신 정치인이 롱런하려면 법조인 특유의 사고 및 소통 방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변호사 출신의 한 로스쿨 교수는 “로스쿨 출신 젊은 정치인들이 다양한 법률문제들에 대해 살아 있는 현장 목소리를 전달하고 입법 활동에 힘쓰면 좋겠다”고 밝혔다.
박수연, 이순규, 우빈, 홍윤지 법률신문 기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