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열기자
전기차 소비가 주춤하자 캐즘, 즉 일시적 수요 둔화 현상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얼리어답터 등 살 사람은 다 샀다는 얘기부터 충전 인프라가 불편해서 구매를 꺼린다, 아직 내연기관차보다 비싸다, 전반적인 신차 소비시장이 쪼그라들었다 등 배경으로 꼽을 만한 건 수두룩하다.
가라앉은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눈에 띄는 건 테슬라다. 주력 차종 모델Y를 앞세워 월 판매량 기준 두 번째로 많이 판 외산 브랜드가 됐다.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Y는 전체 수입차 모델 판매 1위에 오른 것은 물론 국산 내연기관 차종과 비교해도 전체 6위에 올랐다. 정부 보조금 지급기준이 바뀌면서 소비자가 테슬라를 살 때 받는 보조금은 60% 이상 깎였지만 수요는 견조했던 셈이다.
테슬라가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물량을 일정한 간격이 아니라 간헐적으로 주변에 수출한 탓에 수요가 특정 시기에 몰린 영향도 있다. 그럼에도 ‘홈그라운드’ 이점을 업은 내로라하는 국산 전기차를 따돌린 성적표가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팬덤을 위해 고유의 브랜드 정체성을 갖춰야 한다는 점, 가격 경쟁력으로 밀어붙이는 게 여전히 시장에서 주효하다는 점이다. 마케팅의 영역에서는 오래된 불문율이다. 이동수단을 만드는 제작사야 기술 발전에 따른 변화 속도가 빠르게 느껴지겠지만 소비 집단은 더디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소비가 주춤할 때 공급자끼리 펼치는 가격 인하 경쟁은 나쁠 게 없다. 그 자체로 시장의 기초 기능 가운데 하나다. 소비자는 싼값에 재화를 얻을 수 있고 난립했던 공급자 집단에서 실력이 검증돼 옥석 가리기도 가능해진다. 커다란 시장과 정부 지원책을 배경으로 성장했던 중국 전기차 시장도 처지는 비슷하다. 테슬라와 세계 1위 자리를 두고 겨뤘던 비야디(BYD)는 앞다퉈 주요 제품 가격을 낮췄다. 올해 들어 주춤했던 중국 내 전기차 시장은 지난달 70만대 가까이 팔리며 두 달 만에 반등세로 돌아섰다.
우리나라도 직접 영향권이다. 과거에 견줘 수익성이 나빠진 테슬라가 돌파구로 삼는 곳 중에 한 곳이기 때문이다. 올해 1~2월 중국의 전기차 수출액은 51억49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 정도 줄어들었다. 전체 전기차 수출이 주춤한 상황에서도 우리나라와 캐나다, 브라질로 수출한 전기차는 모두 수십 배 늘었다.
수출 증가분은 대부분 테슬라 물량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모델Y를 비롯해 7년 만의 부분변경 신차 모델3 수천 대가 최근 입항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공개된 신형 모델3의 국내 판매 가격은 한창 품귀현상이 불거졌던 2년 전과 비교해 2000만원 이상 싸졌다. 원산지가 바뀌고 배터리 같은 핵심부품 수급선을 달리했다고는 하나 이를 상쇄할 정도로 상품성이 좋아져 잠재 수요자 사이에선 반색하는 기류가 강하다.
캐나다 역시 과거 테슬라 미국 공장에서 생산한 물량을 가져다 시장에 내놨던 걸 중국 공장으로 틀었다. 브라질은 올해부터 외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부과, 세율이 오르기 전 한창 수출을 늘린 것으로 보인다. 시장 상황에 따라 기민하게 대처하는 모양새다. 첨단 제조공법을 도입하거나 자율주행을 위해 기술을 가다듬는 일을 넘어 경험을 쌓은 레거시 제조업체에서나 볼 법한 판매 노하우도 익혔다. 도요타가 증명했듯 부가가치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단계는 판매다. 캐즘에서 벗어날 때 가장 앞서있는 곳이 누구일지 그려진다면 섣부른 판단일까.
산업IT부 차장 최대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