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진기자
몇 년 전 프랑스 파리 출장 당시 파리바게뜨 매장을 찾았다. SPC그룹이 2014년 바게뜨의 본고장인 프랑스에 진출해 만든 1호점(파리바게뜨 샤틀레점)이었다. 빵을 사기 위해 겨울비를 맞으며 매장 밖에서 기다리던 대기줄이 인상적이었다. 빵 맛은 기억이 안 난다. 한국 브랜드라는 점을 알리지 않기 위해 현지 간판을 차별화했다는 회사 측 설명을 듣고 입맛이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분위기는 바뀌었다. 방탄소년단(BTS)과 영화 '기생충' 등 K-콘텐츠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들 콘텐츠에 소개된 한국 음식이 글로벌 입맛을 사로잡은 덕분이다. 해외 파리바게뜨는 'K-베이커리' 대표 주자로, 한국 간판을 당당히 걸고 영업을 하고 있다. SPC는 현재 10개국에서 파리바게뜨 매장 560여개를 운영 중이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지난 5일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에게 민주노총 탈퇴를 강요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SPC의 글로벌 사업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특히 SPC는 최근 파리바게뜨의 이탈리아 진출을 위해 현지 커피기업인 파스쿠찌와 업무협약(MOU)를 맺었다. 허 회장의 구속으로 파리바게뜨의 이탈리아 진출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허 회장은 4차례 검찰 소환 조사에 불응하면서 긴급 체포됐다. 당시 SPC는 파스쿠찌와 MOU 체결을 위한 허 회장의 '바쁜 상황'을 불출석 이유로 제시했다. 허 회장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해외 출장을 이유로 불참했다. 국회는 SPC 계열사들에서 발생한 잇단 사망사고 책임을 묻기 위해 허 회장을 증인으로 불렀다. 하지만 이때에도 'K-푸드의 세계화'와 'SPC 그룹의 글로벌 사업 확장'이 증인 출석을 거부한 이유였다.
허 회장은 2022년 파리바게뜨 빵을 만드는 계열사 SPL에서 끼임사고로 20대 직원이 사망하면서 비판 여론이 커지자 직접 공식석상에 나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에서 그는 SPC 계열사 직원들의 사망사고와 관련해 도덕적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각 계열사의 책임경영 원칙'을 들어 안전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인했다.
파리바게뜨와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등 SPC의 국내 매장은 6000개가 넘는다. 해외 사업을 위해 동분서주한 허 회장이 국내 사업장 문제를 외면하는 태도는 모순적이다.
지난해 청문회에서 허 회장은 "(제빵사들의) 노조 탈퇴나 부당노동행위를 지시하거나 관여한 적 있느냐"라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전혀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검찰은 허 회장이 민주노총 소속 노조 조합원에게 승진 등에 불이익을 주고, 사측에 친화적인 노조 가입을 지원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지시한 몸통으로 보고 있다. SPC는 그동안 계열사에서 사망사고 등 산업재해가 빈번했는데, 검찰 조사대로라면 잦은 산업 재해는 이 같은 노동관과 무관하지 않다.
글로벌 기업의 기준은 해외 매장 수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 먼저다. 허 회장이 구속돼 SPC 해외 사업이 차질을 빚게 되면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일각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