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영기자
금융당국이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주가연계증권(ELS) 판매사에 대한 제재 절차를 본격화한다. 지난 1월부터 3월초까지 두 달간 진행한 민원조사와 현장검사에서 확인된 위법·위규행위와 관련한 검토 결과 등을 담은 '검사의견서' 발송 이후 판매사로부터 공식 답변이 돌아오는 대로 실질적인 제재심의 절차가 개시될 전망이다.
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이번 주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NH농협은행, SC제일은행 등 홍콩ELS를 판매한 주요 시중은행에 '검사의견서'를 송달할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주요 은행에 검사의견서를 전달하고, 공식적인 답변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홍콩ELS 대규모 손실이 가시화한 지난 1월 8일부터 지난달 8일까지 5개 주요 시중은행을 포함해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 신한증권은 등 6개 증권사에 대한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의견서는 금감원이 앞서 민원조사와 현장검사를 통해 적발한 적합성 원칙, 실명의무, 부당권유 금지 등 판매원칙 위반과 관련한 사실 관계를 담았다. 또한 부실한 판매관리체계와 부적정한 영업목표(KPI) 설정 등 현장검사를 통해 확인된 시스템 문제도 적시했다. 금감원은 검사의견서 송달 후 판매사로부터 공식적인 의견이 전달되는 대로 추가 검토를 거쳐 제재 조치안을 만들 방침이다.
제재 조치안이 완성되는 대로 금감원은 이르면 5월 중 제재심의위원회를 개최한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3일 판매사 제재와 관련해 신속하게 절차를 밟아 금융권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면서 절차의 신속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제재심의위원회가 개최된 이후 제재는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결국 금감원이 최초 결론을 어떻게 내리느냐가 금융위 의결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현재까지 금감원과 실무부서 차원에서 공유된 것은 없다"고 전했다.
홍콩H지수 ELS 판매사 제재는 크게 기관 제재, 임직원 제재, 과징금 등으로 나뉠 전망이다. 전체 판매 규모가 18조9000억원에 이르고, 주요 시중은행이 자율배상을 결정한 이후에도 감독책임과 판매사 책임을 성토하는 가입자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만큼 고려해야 할 요소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과징금 규모는 판매사들이 자율배상을 결정함에 따라 정상참작 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불완전판매가 확인될 경우 판매액의 최대 50%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복현 원장은 판매사들이 적절한 원상회복 조치를 한다면 제재와 과징금의 감경 요소로 삼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을 내비쳐왔다. 금융권이 추정하는 배상 규모는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만기가 도래(약 10조원)하는 ELS 상품 손실(손실률 약 50%)의 40% 수준인 2조원 수준이다.
한편 지난달 말 잇따라 자율배상을 결정한 은행권은 내부 전담 조직을 보강 또는 신설하고 배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나은행이 지난달 29일 자율배상 첫 사례를 내놓은 데 이어 신한은행도 지난 4일 10명의 가입자가 배상금을 수령했다. 이들 시중은행은 전문가들이 포함된 자율배상위원회를 꾸리고, 실무 지원 부서를 보강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판매 규모가 가장 많은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도 자율배상위원회 등을 순차적으로 꾸리고 가입자와 협의에 나설 계획이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올해 1~7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계좌만 8만여개에 달하는 만큼, 손실이 확정된 가입자들과 우선 접촉할 방침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손실이 확정된 가입자들에 대한 사전 배상 비율 등을 산정하고 있다"면서 "협의가 끝나면 일주일 내로 입금을 마무리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NH농협은행은 전체 가입자 정보 분석과 배상액 산정 프로세스 수립 등 절차를 밟고 있고, 가장 먼저 자율배상을 결정한 우리은행은 오는 12일부터 만기가 도래하는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개별 협의를 시작한다. SC제일은행은 조만간 자율배상위원회를 꾸리고 가입자들과 협의를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