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압승한 ‘21세기 차르’ 푸틴…'강한 러시아' 통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선 압승은 일찌감치 예상된 결과다. 반정부 인사들의 출마가 가로막히고 친(親)푸틴 세력들이 들러리 선 구도에서 지난 15~17일(현지시간) 선거가 치러진 만큼 관건은 연임 성공 여부가 아닌 ‘득표율’이었다.

우크라이나 침공(특별군사작전)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푸틴 대통령으로선 이번 선거가 사실상 국민 찬반투표나 다름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투표는 형식적이었고, 푸틴 대통령은 이오시프 스탈린 옛 소련 공산당 서기(집권 29년)에 맞먹는 길을 걷게 됐다"면서 "우크라이나, 서방과의 광범위한 대결에서 승리를 원하는 푸틴 대통령으로선 자유재량을 위해 (대선에서) 큰 승리를 거두는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미지출처=TASS연합뉴스]

우크라전 더 험해질 듯

87%대의 역대 최고 득표율로 장기 집권의 토대를 닦은 푸틴 대통령은 이제 전쟁 명분에 대한 자국민의 강력한 지지를 확보했다고 판단,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협상을 통해 종전 해법을 찾을 가능성은 작아지는 셈이다. 미국 평화연구소의 안젤라 스텐 수석고문은 "푸틴 대통령이 보낸 모든 신호는 전쟁이 계속되리라는 것"이라며 "현시점에서 그는 시간이 자신의 편이라고 느끼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선 투표 마지막 날인 이날도 접경지에서는 공습이 이어졌다.

서방과 러시아 간 대립도 한층 심화할 전망이다. 대선을 앞두고 푸틴 대통령은 "주권을 위협받는다면 러시아는 언제든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이른바 핵 경고도 쏟아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진에 맞서 반서방 연대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WSJ는 "더 중요한 선거는 오는 11월 미국의 대선이 될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지 등을 둘러싸고 서방이 균열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유럽과 미국의 선거 결과를 기다릴 것"이라고 짚었다.

특히 러시아와 북한 간 밀착은 한반도 안보 우려를 키우는 부분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북한으로부터 부족한 탄약을 공급받는 등 한층 밀착된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러시아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난 데 이어, 조만간 푸틴 대통령의 북한 답방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도 전략적 협력 강화 의지를 확인한 상태다. 북·중·러 3국의 밀착은 신냉전 구도를 한층 심화시키는 것은 물론 한반도 정세에도 여파가 불가피하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러시아는 왜 푸틴 택했나

러시아 국민들이 장기화하는 전쟁, 서방의 대규모 경제제재, 독재주의 비판 등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푸틴 대통령을 택한 첫 번째 이유로는 ‘대체 불가한 리더십’이 꼽힌다. 뉴욕타임스(NYT)는 "많은 러시아 유권자들은 푸틴 대통령을 지지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면서 이들은 '강한 러시아'를 앞세운 푸틴 대통령이 1990년대 공산주의 붕괴 이후 어려움에 빠졌던 자국을 경제 번영의 시기로 이끌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민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 조사에서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해 내내 80%를 웃돌았다.

장기화한 전쟁과 서방의 제재가 러시아인들을 결집시키는 애국적 명분을 제공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러시아 국내에서 반정부 여론을 결집할 지도자도 마땅치 않다.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는 지난달 수감 중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목숨을 위협받는 다른 반정부 인사들도 대부분 해외에 망명 중이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서방의 제재가 장기화할수록 러시아인들이 느끼는 피로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푸틴 대통령이 이번 대선을 앞두고 최저임금 인상, 세제 개편, 인프라 재건 등을 예고한 배경도 이러한 국민 달래기라는 분석이다.

나발니의 사망을 계기로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 역시 변수다. 대선 마지막 날인 이날 정오에는 러시아와 세계 곳곳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항의를 표하는 이른바 ‘나발니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시위에 참여한 나발니의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는 투표용지에 남편 이름을 적었다고 밝혔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적 나발니의 사망에 대해 "슬픈 일"이라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또한 그는 나발니를 ‘나발니씨’로 칭하면서 사망 직전 수감자 교환으로 석방될 수 있었다는 나발니 측근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국제부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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