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기자
해외여행 다녀올 때 면세점에서 고민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회사에도 하나 사 가야 하나' 입니다. 친한 직장 선배나 동료들이 있을 때야 당연히 기쁜 마음으로 사서 휴가 이야기도 겸사겸사하며 나눠 먹곤 하는데. 우리끼리만 먹자니 옆 부서가 신경 쓰이고, 괜히 어디 다녀온 거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하는 마음이 들죠.
일본의 경우 어떨까요? 답이 정해져 있습니다. 출장이든 어디든 일단 다녀오면 '사간다'입니다. 이때 사가는 선물을 ' 오미야게(お土産)'라고 부르는데요. 오늘은 일본의 오미야게 문화를 소개해드립니다.
보통 오미야게는 출장이나 휴가를 떠나 다른 지역에 갈때 사오는 지역 특산물을 뜻합니다. 일본에 오미야게 학회가 있어서 살펴봤는데 그 특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휴가 등) 이동해 입수한 물품일 것 ▲제삼자에게 주는 것 ▲정보전달을 수반하는 것 ▲물건에 지역적 특이성이 있는 것인데요. 학회에서는 '나에게 주는 선물은 그럼 오미야게로 인정이 안 되냐', '관광지에서 주운 조개나 돌멩이도 오미야게가 되느냐' 등의 고민 접수가 많아 이런 '기준'들을 세우게 됐다고 합니다.
기본적인 개념은 "휴가 또는 출장을 다녀왔는데, 그 지역에서 유명하다고 해서 사 왔습니다. 하나 드리겠습니다"하고 직장 동료나 친구 등에게 주는 것입니다. 몇 박스씩 사서 돌리는 사람은 보기 힘들고, 보통 낱개 포장된 과자 등을 한 개씩 나눠주는 식입니다. 통 큰 한국인 입장에서 '그래도 인당 한 박스는 받아야지 누구 코에 붙이라고……'하게 되는데 맛보기와 성의 표시 느낌이 강합니다.
오미야게는 역사적으로도 뿌리가 깊습니다. 한자를 보시면 그 지방에서 나는 물건을 뜻하는 토산물을 의미하는데요. 일본어로도 한자는 '도산'으로 발음이 되는데, 오미야게로 부르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오미야게 문화가 정착된 것은 에도시대라고 합니다. 당시 서민들의 버킷리스트가 미에현에 있는 이세 신궁을 참배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세 신궁이 일본 황실 조상신으로 불리는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오카미를 모시고 있어 신성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인데요.
당시 이곳을 서민이 왔다 갔다 여행하기에는 경비가 부담됐고, 또 마을 밖에는 악령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함부로 나다닐 수 없다는 믿음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마을별로 차이는 있지만 제비뽑기를 하거나, 가장 용감하고 건장한 사람을 뽑는 방식으로 이세 신궁 참배를 위한 대표자를 뽑았다고 합니다. 이에 마을 사람 모두가 대표자에게 돈을 주고, 각자의 소원을 대신 빌어주기를 부탁한 것입니다.
돈을 줬으니 이세신궁에 다녀온 증거 등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죠. 오미야게의 어원은 '宮?(미야케)'에서 왔는데요. 이는 신사에서 주는 부적을 판자에 붙인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미야케의 '케'는 그릇을 뜻하는데, 이를 받아오는 것이 곧 신의 영력을 담아서 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 몫의 미야케를 신궁에서 사서 돌아갔던 것이 오미야게의 시작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이제 사람들이 몰리거나 부탁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이걸 일일이 가져갈 수도 없겠죠. 그래서 이를 대신하는 물건들이 신궁 근처에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떡, 경단 등 가져가기 편한 간식류였죠. 이를 사가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오미야게의 모습입니다. 지금의 오미야게는 직장 동료나 이웃, 친구들에게 주는 방식으로 굳어졌죠.
그렇다면 보통 일본인들은 무엇을 사 갈까요? 지역별 유명한 오미야게를 살펴봤는데, 2021년 라인 조사에 따르면 1위는 홋카이도의 비스킷 시로이 코이비토였습니다. 2위는 교토의 야쓰하시로, 얇은 쌀가루 반죽에 팥소를 넣은 화과자입니다. 구워서 센베이처럼 만들기도 하고, 반죽 그대로 떡과 같은 식감을 내기도 하는데, 특히 떡 형태의 야쓰하시가 인기가 많습니다. 3위는 히로시마의 명물 단풍 모양을 따서 만든 모미지 만주, 4위는 나가사키 카스텔라, 5위는 도쿄 바나나였습니다. 생각보다 한국에서 관광객들이 사 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확실히 개별 포장돼 나눠 먹기 좋은 것들이 인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일본인들이 한국에 왔다가 돌아갈 때 사가는 오미야게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일본사람 선물로 김, 커피믹스 주면 된다고 했는데, 팬데믹 이후 여행이 재개되고 2030 관광객이 늘면서 이 공식도 깨진 것 같습니다. 과자로는 약과, 참붕어빵,허니버터 아몬드, 허니버터칩, 꼬북칩, 찰떡파이 등을 많이 사 간다고 합니다.
사실 '뭘 저렇게까지' 싶을 정도로 여겨지는 문화일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이 오미야게가 지역 특산물로 경제적으로 창출하는 효과도 어마어마하죠. 지역별로 특산품이 하나씩 있을 정도니까요. 사실 일본인들이 사가는 한국 오미야게에 지역별 특산물은 찾아보기 어려워 참 아쉬웠는데요. 우리도 도쿄 하면 도쿄 바나나가 떠오르듯, 외국인이 열광할 수 있는 서울 등 전국 각지의 대표 상품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