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결국 돌아오지 않은 전공의…애타는 환자들

정부·의료계 강대강 대치에
빅5 병원들 혼란 가중
"환자 생명 볼모, 용납 안 돼"
"의사 책임 돌리면 국민만 힘들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후 돌아오지 않으면서 ‘빅5’ 병원들마저 응급환자를 가려 받는 등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강 대 강’ 대치가 지속되면서 병원 대기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의대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돌아오라고 통보한 마지노선인 지난달 29일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4일 오전 7시30분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대부분의 환자는 진료 시간 이전부터 병원을 찾아 대기하고 있었다. 최모씨(76)는 "오늘 투석하러 왔는데 조금 일찍 나왔다"며 "의사들이 환자들의 생명을 갖고 이런다는 것이 용납이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피검사를 받으러 온 성모씨(62)는 "의사들이 자기네들 밥그릇 챙기는 것 아니냐. 아무리 정부와 싸우더라도 환자 진료는 해줘야 한다"며 "이번이 선진국으로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의사가 늘어나면 국민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의료 대란 장기화에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모씨(70)는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불편하다. 그런데 정부가 너무 졸속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려고 하는 것 같다"며 "한 번에 왕창 늘리면 부작용도 있을 것이다. 의료계와 합의를 해야지 의사들한테 책임을 다 돌리면 국민만 힘들어진다"고 꼬집었다.

같은 시각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도 사정은 비슷했다. 당뇨 검진 때문에 병원을 한 달 주기로 찾는다는 윤모씨(84)는 "의사는 환자 옆에 있는 존재인데 환자를 버리고 간 사람들을 과연 의사로 볼 수 있냐"라며 "병원을 떠난 의사들이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자신들 이익 때문에 한번 환자를 떠난 사람들은 의사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의사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신장암 수술을 받은 자녀의 정기검진 문제로 병원을 찾은 최모씨(55)는 "정부가 의사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의사들을 늘려야 하는데 총선을 생각해서 과한 숫자를 내걸고 졸속으로 정책을 추진하려는 것 같다. 의사 수가 늘어난다고 환자한테 무조건 좋은 건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희귀 난치병 치료를 위해 15년째 1년 주기로 이 병원을 찾고 있다는 한 50대 환자도 "검진 환자들은 아직 진료가 미뤄지지 않았지만, 사태가 길어지면 어찌 되려나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정부가 무작정 의사 수를 늘리려고 하니 의사들이 반기를 드는 것도 이해는 간다. 너무 급하게 정책을 추진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제시한 전공의 복귀 시한을 지나고 첫 출근일인 4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집단행동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영상회의에 참석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삼성서울병원 1층 접수처도 이날 오전부터 대기 환자들로 북적였다. 폐 질환으로 5년째 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김모씨(73)는 "솔직히 말하면 이번에 의사들에게 실망을 많이 했다"면서 "그 어떤 나라도 의사들이 환자 버리고 떠나지 않는데,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 의사들도 좀 성숙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간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현모씨(43)는 "의사는 아무리 상황이 부당해도 국민 생명을 볼모로 대응하지 않았어야 한다"면서도 "정부가 갑자기 의대 정원을 2000명이나 증원하는 것도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한편 조규홍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은 4일 의료현장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가 다수라며 국민 생명을 위해 면허정지 등 법적 처분을 망설임 없이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공의 9000여명이 지난달 29일 복귀시한까지 돌아오지 않았고, 정부가 선처를 약속했던 3일까지도 복귀하지 않은 만큼 사상 초유의 대규모 면허정지 사태도 우려된다.

사회부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사회부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사회부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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