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호기자
윤석열 정부는 올해 초 전국 기초 지방자치단체 76곳이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고, 영업제한시간(0~8시)의 온라인배송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2013년 도입된 대형마트의 영업규제가 담긴 유통산업발전법은 국회 임기가 바뀔 때마다 개정이 추진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유통업계는 30일 개원하는 22대 국회에서 이 같은 대형마트 영업규제 완화와 함께 대규모 점포 출점 때 적용되는 사업조정제도를 가장 개선이 필요한 ‘손톱 밑 가시’로 꼽고 있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에 명시된 사업조정제도는 대기업이 진출하면서 지역 중소기업의 경영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 중소벤처기업부가 중재해 일정기간 사업 개시를 연기하거나 권고하는 제도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올해 2월 규제혁신과제 70여개를 선정해 정부에 전달하면서 유통·식품 분야 1호 과제로 꼽았다.
현재 대규모 점포가 새롭게 문을 열기 위해선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지역 중소유통기업과 상생협력 방안이 담긴 지역협력계획서를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지역 소상공인이 사업조정제도를 활용해 대규모 점포 사업자를 대상으로 사업조정을 신청하면 이에 따른 상생방안을 또다시 협의해야 한다. 중기부는 조정이 불발되면 과태료 부과나 사업조정 이행 등 강력한 제재를 권고·명령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영업 중단까지 내려질 수 있어 유통업계에서는 ‘이중 규제’라고 반발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롯데몰 군산점이다. 2018년 개장한 군산점은 대규모 점포 개설 등록을 위해 2016년 12월 인근 지역 상인들과 합의해 20억원 규모의 상생기금을 마련했다. 하지만 개점을 앞두고 또 다른 지역 상인들이 260억원의 상생기금 추가를 요구하며 중소기업중앙회에 사업조정을 신청했다. 롯데 측은 "이미 상인들과 협의를 끝냈고 기금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사업조정에 나선 중기부는 ‘영업 일시정지’를 권고했다. 군산점은 예정대로 2018년 4월27일 오픈했지만, 중기부는 한달 뒤 ‘영업 일시정지’ 명령을 내렸다가 상인 단체가 사업조정을 철회하면서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사업조정 제도는 특히 유통업계에 집중됐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총 11건의 사업조정 중 유통업계는 9건에 달했다.
유통업계에서는 대규모 점포 출점 당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상생협약을 맺고 지자체 승인을 받았는데 이후 누구나 사업조정을 신청하면 영업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이중규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중기부에 따르면 사업조정 신청은 관련 지역, 해당 업종 중소기업단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중소기업단체가 없다면 해당 업종 중소기업의 3분의 1 이상의 동의를 받은 중소기업도 신청할 수 있다.
또 사업 진출 후 180일까지 사정조정 신청이 가능해 점포가 개점한 이후에도 영업시간 조정 등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중기부에 따르면 사업조정 제도는 2009년부터 2022년까지 총 1045건이 신청돼 832건이 조정 완료됐다. 매년 75건에 가까운 사업조정이 신청된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사업조정 제도는 사실상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이 어려움을 더 키우고 있다"며 "'어느 단체가 사업조정으로 얼마의 협력기금을 조성했다'는 소문이 돌면 다른 단체도 추가로 사업조정을 신청하는 경우가 있어 난감할 때가 많다"고 전했다.
이 같은 대규모 점포 중복규제는 19대 국회에서 개정이 추진됐지만, 이후 주목을 받지 못했다.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에 따라 의회기(국회 임기)마다 추진됐지만, 출점 규제의 경우 ‘대기업 특혜’ 논란으로 인해 공론화되지 못한 탓이다. 김재현 경총 규제개혁팀장은 "대규모 점포는 지역 상권 활성화, 중소기업 판로 확대, 일자리 창출, 소비자 후생 증진 등 긍정적 효과가 있음에도 불합리한 이중규제가 연관 기업들의 사업 예측 가능성과 투자 및 고용 안정성을 저해하는 상황"이라며 "유통법상 전통산업보존구역이 아닌 곳에 개설하는 대규모 점포는 상생법의 사업조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