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금리 이자부담에…기업예금 19년 만에 감소세로

지난해 예금은행의 기업 원화 예금 잔액이 19년 만에 감소세를 나타낸 것으로 조사됐다. 고(高)금리 환경이 지속되면서 이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에 나선 영향으로 풀이된다.

21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업의 원화 예금 잔액은 전년 대비 5조8262억원(0.91%) 감소한 637조5018억원으로 집계됐다. 기업예금 잔액이 감소한 것은 2004년 이래 19년 만의 일로, 한은이 관련 통계를 공개한 1975년 이후 두 번째다.

다사다난했던 기해년(己亥年)이 저물고 있다. 국내 산업계는 전반적으로 올해 우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에 일본 수출규제까지 겹치는 등 '전대미문의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휩쓸려 수출기업들은 물론 내수업종도 한해 장사가 시원찮았다. 11월 수출은 작년 동월 대비 14.3% 감소해, 12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그렇게 힘든 시기였지만 우리 기업인들은 밤낮을 달려 경기의 불씨를 살려내려 애쓰고 있다. 다가오는 경자년(庚子年)은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흰 쥐의 해다. 그 기운을 받아 한국 경제는 힘찬 부활의 노래를 부를 것으로 확신한다. 한국 경제의 심장 테헤란로의 불빛은 희망을 노래하듯 꺼지지 않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기업 예금 잔액은 1975년 1조171억원을 기록한 이래 꾸준히 증가하다 2004년 처음으로 역성장했다. 2004년 말 기업예금 잔액은 전년 대비 4조765억원(2.91%) 줄어든 135조8117억원을 기록한 이래 2022년까지 꾸준한 상승곡선을 그리다 지난해 두 번째로 감소세를 보였다.

예금 종별로 보면 저축성 예금은 522조4406억원으로 전년 대비 4조5984억원(0.87%) 줄었고, 요구불예금 또한 115조611억원으로 전년 대비 1조2279억원(1.06%) 감소했다. 저축성 예금은 정기예·적금, 저축예금, 기업자유예금 등 약정된 기간이 지나야 인출이 가능한 예금을 의미하며, 요구불예금은 보통·당좌예금처럼 언제든 꺼내쓸 수 있는 예금을 의미한다.

기업예금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2021년 말부터 본격화된 금리 상승의 영향인 것으로 풀이된다.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대출금리를 보면 2021년엔 연 2.81%로 10년 이래 저점을 기록했으나 2022년엔 연 4.22%로 오르더니 지난해엔 연 5.28%까지 치솟았다. 이 역시 2012년(연 5.49%) 이래 1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예금 종별 증감 추이를 뜯어보면 저축성·요구불예금 모두 2021년까지는 상승세를 이어갔으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한은이 빠르게 금리를 인상한 2022년엔 요구불예금이 먼저 빠졌다. 2022년 말 예금은행의 기업 요구불예금 잔액은 116조2890억원으로 전년 말(129조3680억원) 대비 13조794억원(10.11%) 줄었다. 이듬해인 지난해엔 저축성·요구불예금 모두 감소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이자 부담을 느낀 기업 예금주들이 먼저 부채 축소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면서 "당장 요구불예금을 동원해 채무를 갚는 한편, 만기가 돌아온 정기예금 등도 재예치하기보단 채무를 상환하거나 당장의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쓴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경제금융부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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