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보령기자
‘이 우편물은 1년 뒤 배달됩니다.’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느린 편지가 전국 곳곳에서 발송되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는 디지털 사회에서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어 관광지는 물론 기업·학교 등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24학년도 숙명여자대학교 입학식에는 신입생이 1년 후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느린 우체통’이 설치됐다. 학교 측은 이를 1년 동안 보관하고 있다가 학생이 속한 학과로 편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숙명여대 관계자는 “학생들의 자기 각오가 입학식에서 가장 잘 표현될 것으로 보고 느린 우체통을 운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부산의 대표 관광지인 광안리 해변에서도 느린 우체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달팽이 모양 조형물로 만들어진 우체통의 이름은 ‘달톡’이다. 달톡 전용 엽서에 글을 적은 뒤 반으로 접고 양면테이프로 봉해 우체통 투입구에 넣어두면 1년 뒤 해당 월 첫 주에 발송된다. 군대 첫 휴가에 쓴 엽서를 마지막 휴가에 받게 된 군인, 미국에서 잠시 놀러 온 딸과 손녀의 편지를 일 년 후에 받게 된 할아버지 등 사연도 다양하다. 1년 후 받은 달톡 엽서를 들고 다시 광안리에 방문하면 관광안내소에서 간식 등이 들어 있는 ‘달달 보물상자’ 또한 받을 수 있다.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는 경주 보문관광단지에 설치된 느린 우체통 엽서 1만1553통을 지난달 발송했다. 엽서는 국내 1만1470통, 해외 83통으로 분류됐다. 이번에 발송한 엽서 앞면에는 경북의 주요 명소로 알려진 청송 주왕산, 청도읍성 등이 담겼다. 보문관광단지 호반광장에 위치한 느린 우체통은 2015년부터 운영돼 매년 두 차례 엽서를 국내외로 발송한다. 9년 동안 누적된 발송 건수는 10만여 통에 이른다.
임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느린 우체통을 이용하는 기업도 있다. 에코프로는 지난달 5일까지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1년 후의 나 또는 가족, 지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행사를 진행했다. 이른바 ‘에꼬가 보내주는 느린 우체통’이다. 에꼬는 에코프로의 대표 캐릭터다. 이번 행사에는 임직원 140여 명이 참여해 사랑하는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 혹은 본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에코프로 측은 편지를 1년 뒤 배송해 추억에 잠길 기회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