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라이트]뜻하지 않은 반려견 추적·동거에 樂이 있었다

'도그 데이즈' 유해진, 개 싫어하는 민상役
반려견 통한 새로운 인간관계 형성 실감
"겨울이가 맺어준 귀한 인연, 감사한 일"

"동물병원 원장님한테는 있는데 민상 씨한테는 없는 게 뭘까요?" "머리 냄새?" 영화 '도그 데이즈'에서 민상(유해진)은 민서(윤여정)의 도움이 절실하다. 준비하는 리조트 프로젝트에 힘을 불어넣을 세계적 건축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환심을 사려고 민서가 잃어버린 반려견 완다를 찾아 나선다.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진영(김서형)의 간청에 못 이겨 주차장에 버려진 반려견 차장님도 임시로 맡는다. 뜻하지 않은 추적과 동거 속에서 개를 향한 혐오와 기피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진다. 대신 민서가 낸 질문의 정답으로 기쁨이 충만해진다.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개념은 너무도 감상적이고 모호하다. 개에 적용하면 의인화할 위험이 따른다. 개를 개 자체가 아닌 인간으로 취급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동물 행동 과학의 권위자 클라이브 D. L. 윈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주장했다. 저서 '개는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는가'에서 "개의 애정 넘치는 본성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개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사랑을 원하는 개들의 욕구를 무시하는 건 그들에게 건강한 식단과 운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만큼이나 비윤리적이다."

개의 사랑은 인간과 1만4000년 이상 형성된 감정적 유대의 초석이다. 인간은 그 중요성을 인식할 책임이 있다. 개의 능력을 입증하는 근거에 비추어 행동을 바꿔야 한다. 개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까닭이다. 그걸 부정하더라도 인간과 개의 관계는 변할 리 만무하다. 인간은 중요한 애착 대상을 잃었을 때 지속적인 외상을 겪는다. 개들은 그렇지 않다. 관계를 맺고 끊는 데 있어 훨씬 유연하다. 불과 몇 분 만에 새로운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심지어 거리의 떠돌이 개조차도 다정한 사람과 재빨리 친해진다. 마치 차장님이 민상과 순식간에 끈끈한 관계로 발전하듯 말이다.

배우 유해진은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견 겨울이를 통해 진실한 사랑을 체감할 수 있었다. "종종 인간을 이해하는 인지능력이 있는 듯했어요"라고 회고했다. "제가 우울하거나 지쳐 있으면 조용히 옆으로 다가와 마음을 달래줬어요. 제 다리 위에 궁둥이를 살짝 걸치고 앉아 계속 얼굴을 안쓰럽게 쳐다봤죠. 반대로 좋은 일이 생겨서 웃고 있으면 마치 자기 일처럼 뛰어다니며 기뻐했고요. 제 마음을 정확히 아는 듯했어요.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아서 고마웠죠."

-민상을 연기하면서 겨울이가 많이 생각났을 것 같다.

"반려견을 안락사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잘 못 보겠더라고요. 저와 마지막까지 함께한 겨울이가 자꾸 떠올라서…. 반려견을 떠나보내는 일이 그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정말 많이 울었죠. 아픔이 3년 정도 지속되더라고요."

-소중한 경험이 반려견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연기에 도움이 됐을 듯한데.

"전반적으로 공감되는 장면이 많았어요. 연기하면서 그리움을 느끼기도 했고요. 관객 대부분도 그러실 거예요. 강아지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물론 민상 같은 사람들도 있겠죠.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싫어하진 않았을 거예요. 각박한 삶을 통과하며 사랑했던 시간을 잊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정확히 민상이 그런 배역인데.

"제 어린 시절 경험이 반영돼 있어요. 초등학교 때 '쫑이'라는 강아지를 키웠죠. 어느 날 학교를 다녀왔는데 보이지 않는 거예요. 어른들이 내다 판 것 같았죠.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어요. 어른들이 싫어질 정도로요. 시나리오에는 이런 설정이 없었어요.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 같아 넣게 됐죠."

-'도그 데이즈' 속 배역들은 반려견을 계기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옴니버스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출연을 결심한 이유에요. 타인들이 자연스럽게 엮이는 흐름이 좋더라고요. 매개체인 개에게 감사한 일이죠. 겨울이를 키우면서 여러 번 체감했어요. 제가 여행하거나 촬영하러 떠나면 대신 맡아준 지인들이 계셨어요. 고마운 마음에 저녁 식사를 대접하며 돈독한 사이로 발전했죠. 겨울이가 만들어준 인연이라 할 수 있겠네요."

-반려견이 주는 행복을 많은 이들과 공유했을 듯하다.

"외사촌 동생이 개를 무척 싫어했어요. 쓰다듬는 것조차 꺼렸죠. 그러려니 했는데 아들이 장성해서 출가한 뒤부터 생활이 단조로워 보이는 거예요. 집안에 생기가 돌면 좋겠다 싶어서 개를 선물해줬어요. 이름을 '럭키'라고 짓더라고요. 제가 '럭키(누적 관객 697만5290명)'로 잘 됐으니 기운을 좀 받아야겠다고(웃음). 지금은 럭키 없이는 못 살 정도의 반려인이 됐어요. 자기도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 몰랐데요. 만날 때마다 고마워하고 있죠."

-대전의 한 유기견 보호소에서 촬영한 장면도 있던데.

"연기하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죠. 누구나 그럴 거예요. 다리 한쪽이 불편하거나 병든 개들이 태반이니까. 일부는 구석에 웅크려서 계속 떨고 있었어요. '어떤 트라우마가 있길래 저럴까?'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더라고요. 상당수가 안락사 절차를 밟았을 거예요. 그런 미래로 안내할 거라면 키우지 말아야죠. 사람들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반려견을 입양했으면 해요."

문화스포츠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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