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 찬반 팽팽…대학 '무전공 모집' 확대 논란 왜?

전공 자율성 확대 vs 기초 학문 붕괴
"복수전공제 활성화로 부작용 최소화해야"

교육부가 2025학년도 입시부터 대학의 '무전공 모집'을 확대하기로 하자 대학가에서 엇갈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장 오는 4월까지 2025학년도 모집단위별 모집 인원을 확정해야 하는 대학들은 고민에 빠졌다. 교육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현장 목소리를 수렴해 일부 인기 학과 쏠림 현상 등 우려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학습 선택권 확대" vs "기초 학문 붕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 제공=연합뉴스]

지난 24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024 교육부 주요정책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향후 전체 학생의 25%를 무전공으로 선발하고자 하는 목표에는 흔들림이 없다"며 "올해 무전공 선택의 범위는 대학 내 모든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유형과 계열·단과대 내 전공을 합쳐 25%까지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전공 모집은 전공 구분 없이 신입생을 선발한 뒤 사후에 전공을 결정하도록 하는 전형을 말한다.

다만 현장 의견을 반영해 2025학년도 입시부터 일정 비율을 무전공으로 선발해야만 지원금(인센티브)을 주겠다고 한 방침은 철회하기로 했다. 이 장관은 "의지를 가지고 목표를 추진하되, 기준에 미달하는 대학도 재정 지원을 하겠다"며 "교육부가 유연성을 발휘해달라는 일부 현장의 요청을 수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이달 초 정책연구진 시안을 통해 수도권 사립대는 입학정원의 20%, 거점 국립대는 25%를 내년도부터 무전공 선발할 시에만 4426억원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지급하겠다고 공개한 바 있다.

당장 지원금이 끊길 위기였던 대학들은 한숨 돌리게 됐지만, 여전히 현장에선 우려가 쏟아진다. 교육부는 무전공 모집을 두고 '학생의 다양한 학습권과 전공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이 같은 제도가 오히려 인기 학과 쏠림 현상을 심화하고 '문사철'(문학·사학·철학) 등 기초 학문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무전공 모집으로 타격을 받게 된 인문대학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24일 전국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국인협)와 전국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사인협)는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무전공 모집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교육부는 무전공 모집 확대를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참석한 강창우 서울대 인문대학장은 "현재와 같이 전공 선택에서 소수 인기 학과로의 쏠림 현상이 극심하게 나타나는 상황에서 대다수 학생은 결국 시류에 따라 인기 학과를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교육부의 당초 취지대로 무전공 제도가 학생들이 적성과 흥미에 맞는 전공을 찾아 선택하도록 돕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교육부가 대학별 특성을 반영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정책을 추진해 대학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립대는 소유주 신념이 강해 교육부 정책에 잘 수용되지 않을뿐더러 학내 반발이 클 수도 있다"며 "국공립과 사립대학, 수도권과 지방 대학이 교육 환경과 여건이 모두 다른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정책을 일률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은 결국 모든 부담을 대학에 떠넘기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교수 채용난 또한 문제로 꼽힌다. 이미 경영·경제·컴퓨터공학 등 일부 인기 학과에선 교수 채용에 난항을 겪고 있다. 강 학장은 "교수는 한번 임용되면 길게는 20년 이상 근속하기 때문에 대학 입장에선 교수 채용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수요에 따라 일부 인기 학과에만 학생들이 쏠릴 경우 교수 채용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기 학과 쏠림' 방지할 대책 필요"

전국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와 전국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가 24일 교육부의 무전공 입학생 확대 방침에 대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사진 제공=연합뉴스]

교육부는 당초 계획한 지원금 제도를 없애고 1년간 '유예기간'을 둔 만큼 현장 상황을 지켜보며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인기과 쏠림 현상에 대해 "어느 시기든 학생들이 유독 선호하는 전공은 있을 수 있다"며 "입학 후 모집 단계에서 전공 선택 자율권을 주는 것뿐 아니라 입학 후 제대로 진로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무전공 입학이 확대되면 우려와 달리 기초 학문의 필요성은 확대될 것이라고도 교육부는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전공을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되면 학생들의 융합 역량이 많이 강조되는데, 그럴수록 기초 학문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라며 "학부에서는 전체 학부생을 대상으로 교양 형태로 기초 학문이 더 많이 제공될 수 있고, 대학원 단계에서는 학문으로서의 연구가 집중적으로 지원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교수 충원에 관해서는 "지금은 교수들이 특정 과에 소속되다 보니 관련 강의만 개설하는 경향이 있는데, 일부 대학이나 해외에서는 교수가 단과대 및 대학 소속으로 돼 있어 여러 전공 강의를 개설하거나 학과 융합적 강의도 개설할 수 있다"며 "이러한 방식으로 특정 전공에 학생이 쏠려도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인기 학과 쏠림 현상 등 교육부가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만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 교수는 "교육부의 추진 배경과 취지에 대해 일부 공감한다"며 "철학·사학 등 비인기 학과를 주전공으로 선택하도록 하되, 제2전공으로 인기 학과를 선택할 수 있도록 복수전공제를 활성화한다면 학과 간 격차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어 "이미 대학들이 전공 학점을 많이 줄인 상태이기 때문에 복수전공제를 활성화할 발판은 마련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회부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사회부 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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