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선진기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를 통한 우회상장에 제동을 걸었다. 스팩 합병 후 주가가 대부분 우하향 곡선을 그리면서 투자자 피해가 이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고금리 한파가 지나가더라도 스팩 시장은 계속 침체 상태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분석된다.
2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날 SEC는 스팩 합병에 대한 정보 공개 강화를 골자로 한 규정을 찬성 3표, 반대 2표로 통과시켰다. 앞으로 피인수 기업이 스팩을 통해 증시에 입성하려면 IPO에 준하는 절차와 방식으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또한 스팩은 초기 인수 단계에 참여한 투자자에 대한 혜택의 정도와 구체적 내용을 앞으로 알려야 한다. 이 규정은 5개월 후 발효된다.
스팩은 오로지 인수합병(M&A)을 위해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다. 개인 및 기관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은 뒤 거래소에 상장한다. 스팩에 인수될 비상장 기업은 거래소가 요구하는 복잡한 규정을 피해 증시에 데뷔할 수 있고, 스팩 주식을 통해 기업 인수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원금 보장뿐만 아니라 합병 후 주가가 오르면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그간 스팩 합병된 상당수 기업들의 주가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스팩 대상 기업은 시장 점유율이나 사업성을 두고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으면서 투자자 관심을 샀지만, 지나고 봤을 때 성공적인 합병 결과를 도출한 스팩이 드물었다는 설명이다.
스팩 시장 조사 업체 스팩인사이더에 따르면 2021년 이후 합병이 완료된 401곳의 스팩 중 주가가 상승한 곳은 27개(6.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스팩 합병으로 기대를 모으며 상장된 미국 핀테크 기업 소파이와 전기차 업체 루시드는 2021년 증시 입성 이후 지금까지 주가가 각각 60%, 90% 빠졌다.
SEC는 스팩 합병 후 주가가 폭락하는 1차 원인을 초기 투자자와 후발 투자자 간 정보 비대칭성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SEC는 스팩이 합병 이후 헤지펀드 등 초기 기관 투자자들에게 할인된 가격에 신주를 제공하는 관행에 대해서도 칼을 댔다.
이번 규칙이 시행되면 업계는 고금리에 칼바람이 불고 있는 스팩 시장이 이제는 껍데기로만 존재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스팩의 성공적인 M&A를 위한 핵심 주체인 초기 투자자와 비상장 우량기업의 메리트가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번 규칙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SEC의 GOP 위원 마크 우예다는 “(이번 규칙은) 스팩이 다시는 시장에 돌아오지 못하게 할 의도인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