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민기자
배우 이선균 이름을 떠올릴 때 슬픔에 잠기는 이들이 있다. 분노 그리고 미안함. 그의 가족이나 동료 배우만 그런 건 아니다. 얼굴 한 번 본적 없고, 대화 한 번 나눈 적 없는데 정서를 교감한다.
세상의 슬픔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다. 서로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이들을 관통하는 그 슬픔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저 인간적인 연민일까, 아니면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출연했던 이선균(박동훈 역)의 대사가 생각나서일까.
"죽고 싶은 와중에, 죽지 마라, 당신 괜찮은 사람이다, 파이팅해라. 그렇게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숨이 쉬어져."
이선균의 그 대사는 드라마 상대 배우에게만 힘을 실어준 게 아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던 어떤 이들에게도 위안으로 다가왔다. 위태로운 시간을 버텨내는 힘이 됐다. 드라마가 현실 세계에서 생명의 구원자가 된 셈이다. ‘나의 아저씨’가 많은 이의 인생 드라마로 떠오른 이유다.
그런 이미지의 아저씨, 이선균은 지금 세상에 없다. 2023년 12월27일 세상을 떠났다.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은 지 두 달 만이다. 이선균이 정말 괜찮은 사람이기를 바랐던 이들에게 마약 의혹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경찰 수사가 의혹을 풀어주기를 바라는 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이선균은 누군가의 협박에 시달리다 경찰에 도움을 청했지만 대중 앞에 먹잇감으로 던져졌다. 사실관계도 불분명한 수사 관련 내용이 대중에게 알려졌다.
유명 배우의 자극적인 소식은 대중의 관음증을 증폭했다. 마약 검사에서는 연이어 음성이 나왔다. 의혹이 해소되리라 생각했건만 그건 사건의 마침표가 아니었다. 이선균 사생활이 널리 유통됐다. 어떤 유흥업소 여성과 나눈 대화 내용이 대중에게 노출됐다. 사안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도덕성 흠집 내기에 이용됐다.
지난 12일 영화·방송단체들은 ‘이선균 인격살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가혹한 인격살인에 대해 우리 입장을 밝히는 것이 동료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영화감독 봉준호, 가수 윤종신 등은 슬픔에 머물러 있지 않고 행동에 나섰다.
이선균을 향한 추모 흐름이 형성되자 대중의 응징 타깃이 바뀌었다. 이선균을 협박한 20대 여성이 새로운 먹잇감이 됐다. 이선균 수사를 담당한 인천경찰청 마약수사계는 다른 경찰의 압수수색 대상이 됐다. 수사 정보를 누가 유출했고, 무분별하게 활용했는지에 관한 응징이 시작됐다.
이선균을 둘러싼 또 하나의 수사. 그렇게 정의는 복원되는 것일까. 낙관론에 무게를 싣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어떤 배우가 다시 대중의 먹잇감으로 던져졌을 때, 우리 사회는 관음증의 유혹을 참아낼 수 있을까. 타인의 삶을, 그의 사생활을 마음껏 재단하고, 뜯고 씹으며 쾌락을 느끼는 사회는 그 자체로 괴물이다.
이선균의 비극은 어떤 20대 여성 그리고 인천 어느 경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 얼마나 병들어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또 하나의 이선균 수사는 사건의 마침표가 아니라 사회 정화를 향한 지난한 과정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