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태영 채권단 '불협화음'의 원인

산은의 소극적 역할에 채권단 불만
태영 측 사정 봐주기 의구심도 확대

태영건설 워크아웃과 관련해 채권단 내 표면화하지 않은 불협화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파열음은 채권 비중이 3%대에 불과한데도 워크아웃을 주도해야 하는 산업은행과 나머지 90% 이상의 채권을 보유한 산은 이외의 채권단 사이에서 나온다. 산은 이외의 채권단은 겉으로는 당국과 산은 눈치를 보면서 보조를 맞춰 나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수면 아래에서는 산은의 소극적 역할과 태영 측 봐주기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이런 분위기는 산은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산은이 적극적인 역할을 했던 과거의 건설사 워크아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최근 태영건설 현장 상황을 점검하러 간 금융회사 관계자는 공사비 여유가 없는 상당수의 현장이 사실상 공사 중단 사태라고 전했다. 하도급 업체들이 현금 지급을 하지 않으면 더이상 공사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실사가 진행되는 3개월간 공사가 중단돼 있으면 그 이후에 파생되는 많은 문제가 연이어 발생할 건 불을 보듯 뻔하다. 한 금융회사 임원은 "사업장을 평가하는 기간만이라도 공사장을 돌릴 윤활유 성격의 자금을 태영건설에 지원하지 않으면 태영건설 PF 우발채무 문제가 상당히 심화할 수 있다"면서 "산은이 태영에 ‘뉴머니’를 투입하는 데 대한 사회적 저항과 부담감이 있겠지만, 긴급 자금을 선순위 채권으로 넣으면 회수 불확실성이 거의 없는데도 이런 역할도 하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태영그룹의 골프장 유동화에 대한 문제점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태영그룹은 빨리 현금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유동화를 택했고 산은도 동의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태영의 골프장 소유권을 그대로 인정하고 나중에 되사갈 수 있는 콜옵션(우선매수권)까지 갖도록 태영 측에 허용한 건 ‘채권 회수의 극대화’ 측면에서 보면 문제가 있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현금화가 급하면 다른 빠른 유동화 방식도 많은데 하필 복잡하게 구조를 짤 필요도 없다는 얘기다. 유동화와 동시에 골프장 매각(True Sale)을 곧바로 추진하지 않으면 산은이 태영 측 편의를 봐줬다는 의혹을 잠재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앞서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자금 사용처 논란이 있었고, 오너들이 직접 사재를 출연하는 대신 티와이홀딩스에 돈을 빌려주는 것으로 갈음하면서 비난이 쏟아진 바 있다.

일각에서는 워크아웃 채권 내 산은의 채권 비중을 3%대로 줄인 것이 산은의 소극적 역할과 태영 쪽 봐주기를 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태영건설 채권 확정 시점에 수조원의 태영건설 책임준공약정 우발채무가 모두 워크아웃 채권에 포함되면서 산은의 채권단 내 채권 비중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것을 두고 나오는 얘기다. 지급보증, 연대보증, 채무인수 등의 우발채무는 보통 워크아웃 채권에 포함된다. 하지만 책임준공 채무를 채권에 포함시키는 건 역사상 유례가 없다는 지적이다. 명분이나 실질적인 이유야 여럿 있겠지만 산은에 대한 불만과 겹치면서 이런 의구심이 확대되는 분위기다.

산은이 모든 채권단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불만을 잠재우면서 워크아웃을 이끌어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채권 기관과 사업장 수가 많은데다 사업장별로도 다양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워크아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90%의 채권단이 원하는 건 산은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을 하는 것과 채권 회수의 극대화를 위한 산은의 대표성 있는 의사결정이다. 수면 아래 불만이 누적되면 자칫 태영건설 워크아웃이 통제불능(out of control) 상황에 빠지지 않으리라 장담하기 어렵다.

증권자본시장부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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