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조슬기나특파원
“삼성 AI폰이 아이폰을 이길 수 있을까.” 실시간 통역 등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된 삼성전자의 ‘갤럭시 S24’ 시리즈가 공개된 직후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기사 제목이다. 미국 현지 언론들은 갤럭시 S24시리즈가 'AI 범용 스마트폰의 시대'를 열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하는 동시에 자국 대표 기업인 애플과 삼성전자의 경쟁 구도를 주목했다. 때마침 언팩이 열린 시점은 삼성전자가 애플에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량 1위 자리를 빼앗겼다는 뼈아픈 데이터가 발표된 다음 날이기도 했다.
그간 시장에서는 삼성전자를 둘러싼 위기감이 지속적으로 확인돼왔다. 핵심사업 부문인 반도체 사업에서 큰 폭의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데다 반도체 구동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부문에서도 선점 기회를 놓쳤다는 뼈아픈 지적이 잇따랐다. 여기에 모바일 부문 또한 신통치 않았다. 프리미엄폰 경쟁에서 애플 아이폰을 따라잡지 못한 상태에서, 되레 중국 샤오미, 화웨이, 오포 등에 저가 시장을 잠식당하는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AI 기능을 앞세운 신형 스마트폰 삼성 갤럭시 S24 시리즈는 '승부수' 그 자체나 다름없다. 현재까지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의 반응도 열광적이다. CNN 방송은 "스마트폰의 다음 시대를 열 것"이라고 보도했다. 경제매체 CNBC는 "스마트폰에서 AI 범용화의 시작을 알리는 제품"이라고 정의했다. 삼성전자가 최초 공개한 AI폰이 향후 스마트폰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쏟아진다. 애플이 차기 아이폰에 AI 기능을 대거 탑재한다고 해도 'AI 스마트폰 시대'의 문을 먼저 연 삼성전자로선 시장 선점에 있어 9개월 이상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언팩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갤럭시 언팩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 화제가 된 배경도 이러한 상황들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해당 사진은 쿡 CEO의 목줄, 부자연스러운 사진 구도 등을 고려할 때 '합성'일 가능성이 높다. 올 하반기 애플 아이폰16에 AI 기능이 탑재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적진에 구경하러 온' 쿡 CEO를 풍자함으로써 삼성전자가 먼저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음을 부각한 셈이다.
언팩 당일 뉴욕 타임스스퀘어를 비롯한 미국 주요 랜드마크 곳곳에는 '갤럭시AI가 온다'는 문구를 앞세운 갤럭시 S24 시리즈 광고가 뒤덮였다. 다음 날인 18일 직접 찾은 뉴욕 맨해튼의 갤럭시 체험공간(갤럭시 익스피리언스 스페이스)에는 AI폰을 직접 확인해보기 위한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기존 사진에 원을 그리는 것만으로 이미지 검색이 가능한 '서클 투 서치', 실시간 통역 통화 등의 기능을 살펴본 현지인들 사이에선 "놀랍다" "유용하다"는 환호가 쏟아졌다. AI 기능 설명을 맡은 한 직원은 "언팩 당일인 전날에는 더 많은 방문객이 스마트폰을 보기 위해 왔었다"면서 "고객들의 반응이 정말 호의적"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삼성전자의 AI폰 공개는 남들에 앞서 새 시장을 창출해내는 '퍼스트 무버'의 행보라는 점에서 더욱 반갑다. 다만 첫걸음에 그치지 않고 확고한 시장 우위를 차지하기까지 과정이 아직 남았다. WSJ의 기사는 "아이폰 이상의 기능을 갖춘 AI폰이 드디어 출시됐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렇게 끝난다. "시리야(애플 아이폰의 음성비서). 듣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