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연기자
현대차·기아가 연구개발(R&D) 조직을 소프트웨어(SW)와 하드웨어(HW) 투톱체제로 구축하고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전환 개발 속도를 앞당기기로 했다. 테슬라처럼 SW 중심으로 차량 개발 체계를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고유의 차체모델(HW) 위에 SW를 별도로 업데이트해 차량 HW를 바꾸지 않아도 소비자에게 항상 신차를 타는 것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게 하겠다는 의미다.
17일 현대차·기아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회사 측은 전날 임직원 대상 R&D 조직 개편안을 설명하면서 개발 속도를 높일 것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현대차·기아는 그룹 내 SW 개발 인력을 하나로 모아 AVP(Advanced Vehicle Platform)본부로, HW 분야는 별도의 R&D 본부를 만들기로 하고 이들 본부 수장에 각각 송창현 사장과 양희원 부사장을 임명했다.
이는 전사적으로 SDV 전환 속도를 높이라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의중과도 맞는다. 정 회장은 최근 SDV 전환에 대해 "늦다, 갈 길이 멀다" 등 직접적인 표현으로 마음속 고민을 드러낸 바 있다.
회사 측은 R&D 조직 개편으로 개발과 검증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는 HW를 먼저 개발한 후 그 위에 SW를 얹었는데, SDV에선 이 작업이 동시에 진행된다. 이 경우 차량의 호환성과 안전성까지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방향성은 반도체에서부터 완성차 양산까지 모두 아우르겠다는 현대차그룹의 ‘칩투팩토리(Chip to Factory)’ 전략의 일환이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2025년 모든 차종의 SDV 전환을 선언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현장에서 송 사장이 밝힌 계획은 2025년 SDV 플랫폼 배포, 2026년 양산차 적용이다. 소비자 관점에서 보면 SDV 전환 계획이 1년 정도 늦어진 셈이다.
이에 정 회장은 SDV 개발 속도를 최대한 높이라는 특명을 내렸다. 이번 CES에서도 정 회장은 비공식적으로 여러 SW 개발업체의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적으로는 모빌아이, 퀄컴 등 SW 및 반도체 회사 부스를 방문하며 SDV 전환에 큰 관심을 보였다.
결국 이번 개편은 SDV 전환에 속도를 내기 위한 정 회장 고민의 결과로 보인다. 그룹 내 모든 SW 인력이 송 사장의 총괄 아래에 놓이게 되면서 송 사장의 리더십도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일찍이 송 사장은 SDV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선 SW와 HW 개발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최근 CES 현장에선 인공지능(AI) 머신 기반의 차량 OS를 공개하고 플릿(법인·렌터카·중고차 대상 대량 판매) 비즈니스에서 SDV 활용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송 사장은 SDV 전환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송 사장은 "현대차는 이제 SDV 전환을 시작하고 있는 단계지만 속도를 굉장히 빠르게 올릴 수 있다"며 "시장에 SDV가 많이 알려져 있고, 어떻게 가면 되겠다는 방향은 이미 내부에서 세워뒀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테크 엔지니어를 채용하는 것이며 협력업체도 적극 활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평소 송 사장은 SW 우수 인재 확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지난해 11월 열린 ‘HMG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기자와 만난 송 사장은 SDV 전환을 위한 핵심 과제를 묻자 "인재"라고 힘주어 말했다. HMG 개발자 콘퍼런스는 국내 우수 IT 개발 인력 확보를 위해 마련된 일종의 채용 설명회였다. 최근 포티투닷이 미국 실리콘밸리와 폴란드 바르샤바에 해외 거점을 설립한 것도 해외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한 차원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모빌리티 SW 인력은 1만명 안팎이다. 반면 SDV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모빌리티 SW 인력이 3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본격적인 SDV 시대 전환을 위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SW 인력 확보 전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폭스바겐, 도요타, 제너럴모터스(GM) 등 완성차 업체들은 전사적인 인력 감축 기조 속에서도 SW 자회사를 신설, SW 관련 인재 영입은 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