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비트코인 현물ETF 중개 금지, 당연한 결정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했는데, 한국 금융당국은 미국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국내에서 거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내 증권사를 통해서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선물 ETF는 살 수 있다.

가상자산 투자자들은 이런 상황에 불만이 많다. 이미 캐나다, 독일, 호주, 브라질 등에서 비트코인 ETF가 상장됐을 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미국에서 상장되니까 이런 조치를 내놨다는 것이다.

뭐가 문제라는 건지 모르겠다. 미국에서 현물 ETF를 승인했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그걸 거래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게 당연한 것인가. 캐나다, 독일, 호주, 브라질 주식시장과 미국 주식시장은 차원이 다르다. 그런 시장에서 주식을 거래하는 한국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미국 시장과 비교해 보라.

정부가 비트코인 선물 ETF는 허용하고 현물 ETF는 허용하지 않은 게 왜 문제인가. 선물과 현물은 다르다. 선물은 파생상품이다. 위험을 감소시키는 헤지 기능, 레버리지 기능, 파생상품을 합성해 새로운 금융상품을 만들어내는 기능 등이 있다.

ETF는 산업 섹터별 투자가 가능하고, 대형주 중형주 소형주 가치주 성장주 등 스타일별로도 투자할 수 있다. 금, 원유, 원자재 등 실제 거래하기 힘든 상품을 주식 형태로 거래할 수 있다. 그러나 가상자산 현물 ETF는 다르다. 가상자산은 쉽게 거래할 수 있다. 현물 ETF는 실제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현물 ETF를 사고 싶은 사람은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사면 된다. 수수료도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더 싸다고 한다.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정부의 비트코인 현물 ETF 중개 금지를 싫어하는 이유는 뭘까. 비트코인이 제도권으로 점차 영역을 넓혀옴으로써 투자 수요가 늘어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은 여전히 투기적 성격이 강하며, 실제 경제에 유용하고 생산적인 일에 쓰인 적이 없다.

주식시장에서는 어떤 기업 주식에 투자하면 해당 기업은 그런 자금을 조달해 사업을 한다. 가상자산에 투입된 자금은 그 가격을 올리는 것 말고 다른 무엇에 쓰이는가. 아무것도 없다(오히려 자금세탁·불법 상속 및 증여 등 범죄적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로 자금이 투입되고 그렇게 투입된 자금이 가격을 상승시켜서 추가적인 자금 투입으로 이어진다. 전형적인 투기다.

미국 SEC가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제도권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ETF 상장을 승인한 것도 아니다. 법원의 결정 때문이다. 승인 근거는 지난해 8월 그레이스케일과의 소송 패소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발표에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또 법원의 법률 해석 방식에 따라 행동한다"며 "지난해 3월까지 SEC는 비트코인 현물 ETP에 대한 20개 이상의 거래규칙변경(19b-4) 양식 승인을 반려했다. 하지만 그레이스케일 GBTC의 현물 ETP 전환 관련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겐슬러 위원장은 "비트코인 현물 ETP 운용사는 상품에 대해 공정하고 진실한 공시를 제공해야 하고, 거래소는 사기 및 시세 조작 방지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해당 입장문에서 줄곧 ETF(Exchange Traded Fund)가 아닌 ETP(Exchange Traded Product)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상품(Product)은 포괄적인 상품군을 의미하는 것으로 펀드(Fund)라는 공식화된 금융상품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속내다.

겐슬러 위원장은 "오늘 특정 비트코인 현물 ETP 주식의 상장 및 거래를 승인했지만 비트코인을 승인하거나 보증하지는 않았다"며 "투자자는 비트코인 및 암호자산과 가치가 연계된 상품과 관련된 무수한 위험에 계속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증권사 등 제도권 금융회사가 가상자산을 거래하거나 중개하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금지해 왔다. 정부가 비트코인 현물 ETF 중개를 금지한 것은 당연하고, 그간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 일관된 결정이다.

경제금융부 정재형 경제금융 부장 jj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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