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경기자
조선 왕궁에서도 돌짐승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왕이 일상을 보내던 공간이나 왕실 행사가 열리던 전각 주변에 많이 놓여 있는데 특히 경복궁은 여기가 동물원인가 싶을 만큼 유난히 석수가 많다.
아마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고궁의 석수는 경복궁의 대문 앞에서 사람들을 반기는 해치상일 것이다. 광화문 광장의 상징이자 서울시의 상징으로도 사용되고 있어 한층 더 익숙한데 지금은 광화문에 자리해 있지만 원래는 육조 거리, 오늘날의 광화문 대로와 광화문 사이에 멀찍이 자리를 잡고 궁에 들어가는 이들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이 인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이 해치상 역시 고개를 위로 치켜들어야만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조형물이었으리라. 앞발은 당당하게 펴고 엉덩이를 내린 채 고개를 틀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장난감을 눈앞에 둔 강아지나 고양이를 떠오르게 하지만 성인 평균 신장을 훌쩍 넘는 눈높이에서 산과 궁을 배경 삼아 오가는 이를 감시했을 풍경을 상상하면 그 인상이 달리 보이기도 한다.
구석구석 매력이 많은 석수지만 나는 이 해치상을 받치고 있는 단의 장식을 좋아한다. 윗단은 해치가 앉아 있는 위쪽으로 활짝 핀 연꽃무늬-앙련 무늬라고 한다-가, 아랫단은 바닥을 향한 연꽃무늬-복련 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그 사이에도 송이송이 피어난 탐스러운 연꽃을 더해 넣었다.
돌로 만든 것이긴 하지만 예쁘게 수를 놓은 고급 목화 방석을 몇 겹이나 깔고 있는 강아지 같달까. 반려동물을 위해 보드랍고 푹신한 마약 방석을 몇 개씩 사두는 사람들이 생각나 푸슬푸슬 웃음이 난다.
이 해치상을 엉덩이 쪽에서 보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몸 쪽으로 바짝 말아 올린, 핫도그를 닮은 통통한 꼬리 옆으로 곱슬곱슬한 털이 나와 있는데 가까이서 보면 해치가 반곱슬 장모종이라는 TMI도 알게 된다. 내 키가 좀 컸다면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쓰다듬어봤을지도 모르겠다.
-김서울,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놀,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