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환기자
뉴욕=조슬기나특파원
대만 총통 선거에서 반중 성향이 강한 라이칭더 민주진보당 후보(민진당)가 당선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대만 선거 결과가 양안(중국-대만)은 물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심화시켜 물가상승 우려를 다시 불러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5일 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3일 대만에서 치러진 총통 선거에서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가 득표율 40.05%로, 33.49%를 얻은 허우유이 국민당 후보를 제치고 새로운 총통에 당선됐다.
라이칭더의 승리로 민진당은 대만 역사상 처음으로 3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민진당은 친미, 반중 성향이 강하고 국민당은 반미, 친중 성향이다. 특히 이번에 당선된 라이칭더는 여러 차례에 걸쳐 대만의 독립 의지를 드러내며 강한 반중 성향을 드러냈다.
라이 후보의 당선으로 대만과 중국의 갈등은 더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 직후 중국의 대만 담당 기구인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은 "선거 결과는 민진당이 섬(대만) 안의 주류 민의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대만은 '중국의 대만'이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에 대해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벼랑 끝 전술과 긴장이 지속되고, 필시 더욱 심해질 것임을 사실상 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인디펜던트스트래티지는 대만을 둘러싼 대립이 "지역적 수준이 아닌 전 세계적 수준에서 막대한 경제적 결과를 수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앞으로 일어날 분쟁의 유형은 대만에 대한 D-데이식 상륙작전이 아닌 혼란과 봉쇄가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대만은 에너지 수입 방해에 매우 취약하다"고 짚었다.
대만을 향한 중국의 경제적 압박은 물론 최악의 경우 군사적 충돌까지 불러와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전망이다.
앞서 중국은 지난 9일 '양안 경제협력 기본협정(ECFA)' 중단을 발표했다. 2011년 체결된 ECFA는 중국과 대만 간의 자유무역협정에 준하는 관세 우대 조약이다. ECFA가 중단되면 중국 본토로 수출되는 대만 상품에 매년 수십억달러의 관세가 붙어 대만 입장에서는 대중국 본토 수출 위축은 물론 경제 상황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은 추가적인 경제압박 조치도 예고했다.
중국이 대만에 대한 본격적인 경제 봉쇄에 나선다면 세계 경제에는 추가 악재가 된다. 대만은 전 세계 반도체의 핵심 제조기지로 전 세계 반도체 칩의 60% 이상이 대만에서 만들어진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중국이 전쟁 없이 대만 봉쇄에 나설 경우 세계 경제 국내총생산(GDP)이 5% 감소하고,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에는 전 세계 GDP가 10.2%(10조달러) 이상 줄어들 수 있다고 지난 9일 진단했다. 블룸버그 예상에 따르면 양안의 전쟁으로 대만이 입을 수 있는 경제적 피해는 GDP의 40%, 한국은 23.3%, 중국은 16.7%, 미국은 6.7%에 달했다.
양안 갈등이 잡혀가고 있는 글로벌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할 우려도 있다. 중국의 대만 경제봉쇄가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시켜 반도체를 비롯한 기계, 석유화학 제품의 가격 인상을 불러오고 이는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상이다. 물가 상승은 금리에도 영향을 끼쳐 글로벌 금융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중동 역시 확전 양상이 되는 가운데 이번 대만의 선거 결과 때문에 중국과의 갈등이 커져 세계적으로 물가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며 "양안 갈등이 전쟁까지 갈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미국의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가 낮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정해영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수석연구원은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중국은 대만에 대한 군사, 경제, 외교적 압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상수화된 동북아 지정학 리스크에 대비해 공급망 사전 점검 및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로치 인디펜던트스트래티지 회장은 "전 세계 무역의 70%가 대만과 중국 사이의 해협을 통과한다"면서 대만 침공이 아닌 봉쇄만으로도 수요 감소, 인플레이션 상승 등 전 세계 경제에 최악의 여파를 줄 수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미·중 갈등으로 미국의 군비 지출이 늘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이 군사비 관련 지출을 늘리면 글로벌 유동성이 증가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며 "향후 미국의 군사비 관련 재정지출 확대 여부를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