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기기자
아직 겨울이지만 추위를 녹이는 온정의 손길로 대한민국이 뜨겁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 12일 기준 나눔 온도가 96.9도라고 밝혔다. '희망2024나눔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모금회는 이날까지 4213억7000만원을 모았다. 2023년 12월1일부터 2024년 1월31일까지 4349억원을 모아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는 캠페인이다. 모금회는 목표액의 1%가 모일 때마다 나눔 온도가 1도씩 오르는 사랑의 온도탑을 만들었다. 한국이 기부 열기로 끓어오르기 직전이다.
이름도, 나이도 밝히지 않은 '남몰래 선행'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최근엔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배성재씨가 익명으로 장애인을 위해 수천만 원을 기부해왔다는 미담이 전해졌다. 10억원 이상의 거액을 기부하는 개인 기부자도 속속 등장하면서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2023년 11월 출범한 10억원 이상 초고액 기부자들의 모임 아너 소사이어티 오플러스는 현재까지 총 4명의 회원이 탄생했다. 2018년 시작된 일시 또는 약정으로 10억원 이상을 기부하는 초고액 개인기부 프로그램인 한국형 기부자맞춤기금 역시 최근 15호까지 늘었다. 모두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인들의 기부는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을 조금씩 흔든다. 대표적인 정치·경제·연예계 기부왕은 누가 있을까.
정치계 대표 기부왕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다. 안 의원은 2011년 당시 약 1500억원 상당의 안랩(안철수연구소) 지분을 기부해 재단법인 동그라미재단을 세웠다. '정치권 기부왕'인 안 의원은 평소 근검절약을 실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국민의힘 대선 경선 당시 발바닥이 훤히 비칠 정도로 해친 양말을 신은 모습이 카메라 앵글에 잡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안 의원은 당시 "제가 물건, 음식을 정말 아낀다"며 "그래서 모으고 모아서 1500억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경제계에서는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꾸준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이 회장은 건설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부영의 창업주이자 그룹 지분 약 94%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다. 이 회장이 지금껏 사비로 기부한 금액은 2650억원에 이른다. 특히 이 회장은 이색적인 기부로 눈길을 끌었다.
이 회장은 지난해 고향 사람들과 초·중·고 동창들의 개인 통장으로 거액의 격려금을 전달했다. 지난 6월 자신의 고향인 운평리 주민 280명에게 1인당 최대 1억원을 입금했다. 거주 연수에 따라 5단계로 차등 지급했으며 주민들은 세금을 빼고 2600만원에서부터 최대 9020만원까지 수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8월엔 동산초·순천중·순천고 동창생 약 170명에게 각각 5000만~1억원을 전달했다.
최근엔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버스 600대, 1200대를 각각 기증했다. 이 회장이 이들 나라에 버스를 기부한 건 아이들의 안전을 걱정해서다. 출장차 이들 나라를 방문했는데, 아이들이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어 위험하게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게 걱정됐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혹서의 날씨에 보호장비 하나 없이 아이들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잘못하면 위험천만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이들을 위한 안전한 대중교통 필요성을 느꼈다"고 밝혔다.
차세대 경제계 기부왕 타이틀을 이미 예약해 놓은 사람도 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경영쇄신위원장은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가입하며 죽기 전까지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할 것을 약속했다. 현재 김 위원장의 주식재산은 6조원대로 추산된다. 기빙플레지는 2010년 빌게이츠와 멜린다 게이가 워런 버핏과 공동으로 만든 글로벌 기부운동으로 10억달러 이상의 자산가가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기로 약속해야 회원이 될 수 있다.
김 의장은 기빙플레지 서약서에서 "목표했던 부를 얻고 난 뒤 인생의 방향을 잃고 한동안 방황해야 했으나 '무엇이 성공인가'라는 시를 접한 뒤 앞으로의 삶에 방향타를 잡을 수 있었다"며 "서약을 시작으로 우리 부부는 기업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지금 카카오는 위기다. 경영 문제라기보다는 세상과 관계에서 생긴 문제로 조직이 흔들리고 있다. 김 의장이 한 약속을 지킨다면 사라질 위기라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온 국민의 사랑을 먹고 크는 연예계에도 고액 기부자가 많다. 가수 아이유는 연예계 기부왕이다. 아이유는 사회취약계층은 물론 자연재해나 재난으로 예기치 못하는 어려움이 생기는 곳에도 가장 먼저 도움의 손길을 뻗고는 한다. 지금껏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한국아동복지협회, 한국미혼모협회,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대한간호협회, 대한의사협회 등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성금을 전달했다. 데뷔 이후 누적 기부액은 50억원에 달한다. 새해 첫날에도 사회 취약계층을 위해 2억원 쾌척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2022년 10월 사랑의 열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50억원을 기부하며 한국형 기부자맞춤기금 13호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다음 해인 2023년 1월에도 모교인 서울대학교에 "문화관 증개축에 써달라"며 50억원을 기부했다.
연예계 원조 기부왕은 하춘화다. 금액으로도 압도적이다. 48년간 기부금액은 약 200억원이 넘는다. 하춘화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기부를 이어왔다고 밝힌 바 있다. 하춘화는 지난해 9월 한 라디오방송에서 "모두 아버지 가르침 덕분"이라며 "나누다 보니 칭찬이 제게 돌아왔지만 아버지가 하신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