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길기자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글로벌 석유화학 시장에서 중국과의 격한 경쟁을 예고했다. 에틸렌 등 각종 석유화학제품 원료인 기초유분 자급이 향후 2~3년 내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 해외시장에 유입되는 물량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 부회장은 15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 참석을 앞두고 최근 포럼 홈페이지에 올린 기고문에서 "중국의 석유화학 기초유분 자급률이 100%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국내) 석화기업들은 파트너십 구축이나 현지화를 통한 리스크헤지(위기 회피) 등 공급망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규모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자급자족을 넘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릴 경우 국내 석화기업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인 것이다.
그동안 중국은 석유화학 주요 수입국으로 분류됐다. 공급을 지속적으로 늘려도 수요 증가 속도와 비교해 여전히 모자랐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우리나라 입장에서 중국은 석유화학 업계 최대 시장이었다.
하지만 2020년 이후 석화 설비를 대규모로 증설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2020년 3200만t이던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CAPA)은 2022년 말 4600만t으로 늘어나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주로 기초유분을 중국에 수출하던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이 에틸렌 등 기초유분을 자국 내에서 소화하지 못할 경우 글로벌 시장으로 유입돼 국내기업들과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신 부회장은 "오일메이저와 정유사가 석유화학(다운스트림)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 석유화학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경고하며 "기존 석유화학 회사들은 고성장·고부가가치 분야를 추구할 수밖에 없이 떠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신 부회장은 석유화학 업계 시황을 좌우할 중국 경제에 대해 기대만큼 도움이 되질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종식되고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으로 소비가 늘어나면서 세계 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면서도 "중국 리오프닝은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저성장, 고물가, 고금리의 삼중고가 지속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하면서 석유와 천연가스, 농산물, 주요 광물에 이르기까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글로벌 공급망의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둔화가 예상되는 전기차와 관련해선 "저렴한 전기차를 선호하는 수요와 고금리로 성장은 둔화했지만 멈출 수 없는 추세"라며 "2030년에는 전기차의 비중이 50~55%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신 부회장은 지난해 다보스포럼 산하 ‘화학·첨단소재 산업 협의체’ 의장으로 선출된 바 있다. 이번 포럼에선 글로벌 화학 산업의 주요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포럼 참석은 올해로 4년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