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부동산 PF 결국 ‘삐끗’…'이제는 옥석 가려야'

“어느 하나가 삐끗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IMF) 일주일 앞두고 벌어진 이야기를 다룬 영화, 2018년 개봉한 ‘국가부도의 날’에서 윤정학(유아인)이 남긴 대사 중 하나다. 그리고 이 대사는 올 한해 건설업계에서 자주 언급된 유행어 중 하나가 됐다.

건물을 짓는 시공사(건설사), 부동산 개발을 하는 시행사, 시행·시공사에 돈을 빌려준 금융권 등 너나 할 것 없이 유사한 우려의 말을 쏟아냈다. 모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에 대한 걱정이었다.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다. 부동산 PF로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는 태영건설이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신청했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어느 하나가 삐끗할 것”이라는 경고의 울림이 몇 차례 나왔다. 시공능력평가 75위 대우산업개발을 비롯해 109위 대창기업, 113위 신일까지 1군 건설사의 부도가 이어지며 올 한해에만 19개의 건설사가 부도 처리됐다.

그러나 정부는 부실 사업장 정리를 통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금리 인하, 부동산 시장 안정화 등의 외부 환경 변화에 기댔다. 대주단 협약을 통해 만기 연장과 이자 유예를 유도하고, ‘주택 공급 활성화’라는 명목 아래 PF 대출 보증 규모와 한도를 확대하는 등 심사 기준까지 완화했다. 이러는 사이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9월 말 기준 134조3000억원으로 6월 말보다 1조2000억원 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금리는 높고, 부실 사업장은 산적해 있다.

이런 상황에 10위권의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정부의 PF 부실 사업장에 대한 지원 방안이 효과를 보지 못했음은 물론, 금융권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불신이 불거지는 결과가 돼 버렸다. 최악의 경우 국가부도의 날에서 언급된 ‘와르르 무너지는’ 사태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자본시장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신용과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하는 곳이다. 그런데 정부 정책의 신뢰가 무너졌으니, 앞으로 금융권은 부동산 PF에 대한 관리를 더욱 옥죌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건설업계는 초비상사태다. 금융권에서 자금 회수에 나서기 시작하면 줄도산을 피할 방법이 없다. 실제로 정부의 PF 지원 방안인 만기 연장과 이자 유예 등을 통해 생명줄을 연장한 사업장이 부지기수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건설기업의 합산 차입금 32조5000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10.4% 늘었다. 반면 9월까지 누계 기준 올해 주택착공은 12만6000가구로 전년 동기 57.2% 감소했다. 빚은 늘고 있지만,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사업장이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다.

더는 시장이 살아나길 기다릴 여유가 없다. 이제는 부동산 PF 부실 사업장에 대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시기를 놓치면 진짜 와르르 무너지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는 정상 사업장에는 충분히 유동성을 지원하고, 부실 사업장은 대주단에 대한 만기 연장을 중단하는 등 자기 책임 원칙에 따라 정리에 나서야 할 것이다.

건설부동산부 차완용 기자 yongcha@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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