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기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 커플에 대한 가톨릭 사제의 축복을 허용했다. 동성애 행위를 죄악시해왔던 전통을 깨고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가톨릭계는 전통 교리를 수정한 것이 아닌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범위를 확장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발표한 '간청하는 믿음(Fiducia supplicans)' 제목의 교리 선언문에서 주목할 점은 동성 커플에 대해서도 가톨릭교회에서 사제가 축복을 내릴 수 있다는 표현이 담겼다는 것이다. 그간 교황청이 동성애를 배척해왔던 만큼 이번 선언은 가톨릭교회의 역사적 변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교리성은 "축복은 모든 규정에 어긋난 상황을 승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느님이 모든 이를 환영한다는 의미"라며 "단순한 축복을 통해 하느님의 도움을 구하는 모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교회가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막아선 안된다"고 밝혔다.
다만 교리선언문은 "(동성 커플) 축복의 형식이 혼인성사의 정식 축복과 혼동을 유발하지 않도록 교회가 이를 의식으로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 "하느님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에게 축복이 내려지는 것이며 하느님의 사랑은 훨씬 큰 차원으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했다.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은 교회의 정규 의식이나 미사 중에 집전해선 안 되고 이성의 혼인성사와는 다르다'는 단서도 달았다. 동성 커플의 결혼 자체를 인정하는 등 교회의 전통적인 교리를 수정하는 것이 아닌 축복의 범위를 더 확장했다는 의미다.
선언문을 발표한 빅토르 마누엘 페르난데스 신앙교리성 장관(추기경)은 "축복받을 수 있는 범위를 넓힌 것은 진정한 발전이자 축복의 목회적 의미에 대한 명확하고 획기적인 기여"라며 "교황 성하의 목회적 비전에 기반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 홍보국장 민범식 신부도 "이번 선언으로 인해서 결혼이라든지 성, 혹은 동성 커플에 대한 가톨릭의 가르침, 교리가 바뀐 것은 없다"며 "축복에 대한 이해를 좀 더 확장해서 축복을 청하는 이들에게 교회가 사목적인 배려로 축복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이해를 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가톨릭교회는 그간 동성애적 성향 자체는 죄는 아니지만 "동성애 행위는 그 자체로 무질서"라고 천명해왔다. 앞서 2021년 신앙교리성은 동성 결합을 인정하거나 옹호하지 않는다며 동성 결합을 축복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성소수자 및 동성애자들의 인권 보호를 강조하면서도 동성 결합·결혼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온 바 있다. 다만 지난 10월 동성 결합이 이성 간의 결혼과 혼동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하에 사제들이 판단에 따라 동성 결합을 축복할 수도 있다는 취지로 다소 완화된 입장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