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서율기자
지난달 30일 오후 1시께 찾은 서울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 한 고시식당. 뷔페식으로 운영되는 이 식당에는 한창 점심시간임에도 사람들이 뜨문뜨문 앉아서 식사하고 있었다. 젊은이들 사이에는 중년남성 세 명도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10년 넘게 이 자리에서 고시식당을 운영하는 백모씨(67)는 "이전보다 매출도 많이 줄고 이곳 근방의 고시식당도 문을 많이 닫았다"고 전했다.
대학동 일대 고시원 10곳을 찾았더니, 수험공부를 하는 학생들만 받는 고시원 두 곳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양한 연령대의 세입자를 받고 있었다. 수험생활을 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직장인, 중장년층 등 고시촌의 수요는 다양해졌다. 고시촌에 있는 고시원에서는 계절학기를 듣는 학생 수요를 제외하고는 단기수요보다는 장기수요가 많다고 고시원 운영자들은 전했다. 고시원을 운영하는 A씨는 "우리 고시원에는 20대보다 30~40대들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시원 관계자 B씨는 "20대 후반에서 30대까지 수험생과 직장인이 섞여 있다"며 "계절학기 때문에 찾는 서울대생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장기거주다"고 덧붙였다.
2017년 사법시험 완전 폐지 이후 쇠락하던 고시촌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인근에 경전철 신림선 서울대벤처타운역이 생기면서 강남 직장인까지 수요가 더욱 다양해진 것이다. 서울대벤처타운역에서 신림역까지 신림선을 타면 2호선을 타고 업무지구인 강남·선릉·삼성역까지 연결된다. 대학동의 올해 10월 주민등록인구에 따르면 10대 미만, 90대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인구가 전년 동월 대비 증가했다. 특히 2017년 사법시험 폐지 이후 감소하던 20대 인구는 역이 개통된 뒤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10월 기준 대학동 20대 인구는 6107명에서 올해 10월 6494명으로 증가했다. 30대 역시 2017년 10월과 올해 동월을 비교했을 때 382명이 증가했다. 고시원을 운영하는 C씨는 "역이 생기면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입소자의 40%는 되는 것 같다"며 "강남 방세와 물가가 비싸다 보니 이곳에서 방을 찾았다"고 말했다.
다양해진 수요에 원룸 격으로 옵션을 완비해놓은 고시원들도 있다. 한 고시원에서 3년간 거주하다가 새 고시원을 알아보는 중인 이모씨(34·감정평가사 준비생)는 "최근에는 일반인도 많이 들어오다 보니 풀옵션인 고시텔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고시원을 '미니원룸'으로 칭하는 곳도 있었다. 고시원 관리자 D씨는 "고시원은 방에 책상만 있다면 미니원룸 같은 경우 방 안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다"며 "원룸보다 크기는 작지만, 보증금과 가격이 싼 이유로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고시원은 작은 방의 경우 20만원대에서 큰 방의 가격도 최대 40만원 선이었지만, 신축 건물에 세탁기·건조기 등은 개별 방에 완비해놓은 한 고시원의 경우 월세가 최소 65만원부터 시작했다. 이곳 역시 30대 직장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게 고시원 측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