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기자
과거 고등학교 재학 시절 교사들이 자신을 괴롭혔다는 망상에 빠져 모교 교사를 찾아가 흉기를 휘두른 20대 남성이 중형을 선고받았다. 23일 대전지법 형사11부(최석진 부장판사)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28)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또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도 함께 명령했다. 다만 검찰이 요청한 5년간 보호관찰 명령은 기각했다.
A씨는 지난 8월4일 오전 10시께 대전 대덕구 한 고등학교에 침입해 교사 B씨(49)의 얼굴과 옆구리 등을 흉기로 10여 차례 찔러 살해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 당시 A씨는 별다른 제지 없이 학교 정문을 통과해 교내로 들어온 뒤 2층 교무실로 올라가 B씨를 찾았고, 그가 수업 중이란 말을 듣고는 복도에서 기다렸다. 이후 A씨는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B씨를 발견해 흉기를 휘둘렀다. 범행 직후 달아난 A씨는 같은 날 오후 12시20분께 사건 현장인 학교로부터 7~8㎞ 떨어진 아파트 주변에서 붙잡혔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나는 사이코패스다. 과거 피해 교사가 근무했던 고등학교를 나왔으며, 당시 안 좋은 기억이 있어 범행했다"고 말했다. A씨는 B씨를 비롯한 다수의 교사로부터 고교 재학 시절 집단 괴롭힘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으나, 조사 결과 A씨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A씨가 정신질환에 따른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계획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범행 20일 전인 지난 7월14일에도 학교에 갔다가 B씨를 만나지 못해 개학 날짜에 맞춰 다시 찾아갔다. 또 B씨가 근무하는 학교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학교에 전화를 걸기도 했다.
A씨는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정신과에서 우울증과 조현병 증세로 통원 치료를 받았다. 의사는 그에게 입원 치료를 권유했으나 A씨는 이를 거부하고 지난해 12월부터는 약물 치료마저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26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피고인의 정신질환은 범행 동기에만 영향을 미쳤을 뿐, 범행 후 전화번호를 변경하거나 수일 전에 여권을 신청하는 등 계획범죄로 죄질이 불량하다"며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조현병 증상인 피해망상에 의해 범행을 저질렀으나 범행 장소나 방법·동기 등을 고려하면 매우 위험하고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는 심각한 상해를 입어 현재도 신체적 기능이 회복되지 않았으며 장기간 재활이 필요한 데다 정신적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다"며 "피해자와 가족이 엄벌을 요청하고 있는 점과 범행 방법 등을 볼 때 중형이 불가피하고 피고인이 정신병을 알고 있었음에도 가족들이 제대로 조처하지 못한 점 등으로 볼 때 재범 우려가 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