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결권 시행]①창업자 지분 고민 줄고 VC 투자 활성화 기대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주에게 1주당 최대 10주 복수의결권 허용
벤처회사 70.8% "향후 제도 이용"…VC업계 "회수·밸류에이션 산정에 긍정 영향"

벤처기업 창업주가 대규모 투자를 받아도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벤처기업 복수의결권 제도가 17일 본격 시행됐다. 복수의결권 제도는 외부 투자를 받으면 창업주의 경영권이 불안해진다는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2020년 말부터 필요성이 제기돼왔고, 법 추진 약 3년 만에 제도의 첫 발을 뗐다.

이날 시행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 조치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은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주에게 1주당 최대 10주의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하려면 창업주로서 현재 회사를 경영하고 있어야 한다. 또 누적 투자가 100억원 이상이어야 하고, 마지막 투자는 50억원 이상 규모여야 한다. 투자 유치로 창업주 지분이 30% 이하로 내려가거나 최대주주 지위에서 벗어나게 되면 복수의결권 발행 요건이 충족된다.

이를 위해 회사 정관을 바꿀 때나 복수의결권을 발행할 때나 모두 발행주식의 4분의 3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 복수의결권 존속 기간은 최장 10년이며, 이 기간이 지나면 즉시 보통주로 전환된다. 만약 상장기업이 된다면, 남은 기한과 상장일로부터 3년 중 짧은 기간으로 존속기간이 변경된다. 이사진 보수와 책임 감면, 감사 선임, 배당 등 주주권익이나 창업주의 사적 이해관계와 연관된 사안엔 제도를 활용할 수 없다. 이에 대한 의결권은 1주당 1개로 제한된다.

그간 일부 창업주는 지분 일부를 대가로 내놓았다가 경영권이 흔들릴까 우려하며 외부 투자 자체를 꺼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미국·영국·프랑스 등 17개국은 대규모 투자 유치 이후에도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이미 복수의결권 제도를 시행해왔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과 미국 기업분석회사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글로벌 100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하, 창업 10년 이하인 비상장기업)의 국가별 비중은 미국 59개, 중국 12개, 영국 7개, 인도 6개, 독일 3개, 캐나다 2개, 이스라엘 2개 등 순이었다. 한국 1개에 불과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복수의결권 도입을 위해 2020년 말부터 제도 시행을 추진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3년여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재벌 대기업 총수의 세습 수단 악용, 상법 원칙과의 상충, 소액투자자 피해 등을 우려하는 반대 의견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발행 요건을 높이는 작업 등을 통해 개정안은 지난 4월 비로소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혁신벤처단체협의회와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일제히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날 벤처기업협회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봐도, 벤처기업 291개사 중 70.8%는 "향후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중기부는 복수의결권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기업을 300~400여개로 추산한다.

장기적으로 전체 시장이 성장할 것이란 점에서 벤처투자 업계도 긍정적이다. 윤건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DSC인베스트먼트 대표)은 "창업주 지분이 너무 낮으면 기업공개(IPO)가 어려울 수 있는데, 복수의결권 제도로 (상장심사 등) 과정이 수월해진다"며 "투자하는 입장에서도 회수(exit)하기 훨씬 쉬워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창업주가 지분율을 걱정해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주가 수준)을 높이려다가, 낮은 밸류에이션으로 투자하려던 투자자가 돌아서는 경우가 많았다"며 "복수의결권이 시행되면 창업주의 고민이 줄고, 투자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최대 벤처캐피털(VC)인 IMM인베스트먼트의 정일부 대표도 "복수의결권은 IPO에 필요한 제도"라며 "최대주주 지분율이 20~30%가 아니어도 상장할 수 있는 미국 등과 달리, 한국거래소는 최소 1년 이상 보유할 수 있는 지분율을 30% 정도로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주주 중심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한국에선 지분율이 핵심"이라며 "성장을 위해 외부 투자를 받다 보면 의결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문제로 IPO가 안 될 수 있는데,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증권자본시장부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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