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갈까 봐 사이렌을 울리지 않았다." 지난 8월 산불 화재로 큰 피해를 입은 하와이 마우이 카운티의 비상관리국 수장인 허먼 안다야의 변명에 가까운 발언이다. 1918년 453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네소타주 산불 이후 미국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해당 화재로 97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고 여전히 수십명이 행방불명 상태다. 불은 여의도 면적(2.9㎢)의 약 3배에 달하는 2170에이커(8.78㎢)를 태우고 수천 채의 주택이 소실되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당시 미 국립 기상청은 허리케인이 발생한 상황 등을 고려해 이미 하와이 지역의 화재 위험성에 대해 사전 경고했다. 그러나 해당 지역 당국은 화재를 비롯한 재난에 대한 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화재는 행정당국의 무사안일과 화재 초기의 대응 부실이 부른 인재(人災)였다.
하와이의 사례는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발생한 재난이었지만 서울과 같은 대도시였다면 여파가 사뭇 달랐을 것이다. 현재의 대도시는 건축물과 시설물의 대형·고층·복합·지하화 등과 더불어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융합되어 기능하는 공간이다. 기술발전으로 고도로 집적화된 대도시 편리성의 이면에는 재난 발생 시 그 전개 양상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도 상존한다. 단 한 번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응도 허락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맞는 철저한 대비만이 시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곧 차가운 바람과 함께 겨울이 찾아온다. 최일선에서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위한 정책을 집행하는 대표적인 조직이 소방이다. 소방은 매년 11월을 ‘불조심 강조의 달’로 정하고 다가오는 겨울철에 대비한 화재 예방 캠페인을 전개하고 재난 발생 시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한 여러 안전대책을 마련해 시행한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서 추진하는 이번 겨울 주요 안전대책은 첫째, 주택화재 인명피해 저감을 위해 스프링클러가 미설치된 노후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에 대해 소방 특별조사, 화재 안전 상담 등을 통한 안전관리 강화다. 둘째, 전통시장·다중이용시설·지하연계복합건축물·캠핑장·게스트하우스 등 시민 생활 밀집 대상에 대한 맞춤형 화재 안전대책의 집중 추진이다. 셋째, 재난 약자와의 안전 동행을 위해 요양·병원·쪽방·주거용 비닐하우스 등에 대한 대상별 소방 안전 관리대책을 적극 시행한다. 넷째, 대형 건설 현장·화재 예방 강화지구 및 한옥밀집지역·셀프주유소·대형 창고시설에 대해서는 서울시 특성에 맞는 화재취약시설 안전 강화대책을 통해 겨울철 화재 안전을 도모한다.
물론 이와 같은 소방 안전대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실천이 전제되어야 한다. 코로나19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시민이 보여주신 자발적인 참여 정신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번 겨울에도 안전의식이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발현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했던 말이 있다. "나에게 나무를 베는 데 6시간이 주어진다면, 먼저 4시간은 도끼날을 가는 데 쓰겠다." 하와이 화재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겨울로 접어드는 이때 유비무환의 자세로 올겨울을 대비하자.
황기석 서울소방재난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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