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6년간 집에만 있었는데'…고립·은둔 청년들의 회복기

서울 청년 고립·은둔 ‘최대 13만명’
심리 상담, 일상 회복 지원
올해 1078명 지원해 502명 선정

“6년 동안 집 안에만 있었고, 연락하는 친구들도 없었어요. 오로지 가족들하고만 소통했어요. 사람을 안 만나다 보니 말을 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5000걸음 걷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요.”

서울 광진구에서 열린 청년이음센터 프로그램에서 청년들이 춤을 배우고 있다. [사진=임춘한 기자]

26일 오후 서울 광진구에서 열린 청년이음센터 프로그램에서 만난 김모씨(27)는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회상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며 좋지 않은 생각도 했던 그는 용기를 내 한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소개받은 사회복지사를 통해 청년이음센터를 알게 됐다. 김씨는 “사실 처음 참여할 때는 무척 두려웠다. 그래도 제 상황을 극복하고 싶었고 용기를 내서 신청하게 됐다”며 “이곳에서 전문기관을 통해 검사받고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이후 그의 삶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씨는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서는 체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닝, 근력운동 등을 시작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청년이음센터는 서울시와 함께 고립·은둔 청년들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심리상담 및 맞춤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이날 오후 1시 13명의 청년은 식사 준비에 한창이었다. 시끌벅적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순간 ‘장소를 잘못 찾아왔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들은 점심 메뉴를 정하고, 대형마트에 함께 가서 장을 봐왔다. 오늘의 식사는 치킨 샐러드 샌드위치였다. “닭가슴살은 ○○○님이 후원해주셨습니다”라고 하자 박수와 호응이 쏟아졌다.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고, 너나 할 것 없이 뒷정리를 같이했다. 한 청년은 노래하고, 다른 청년은 편하게 누워 휴식을 취했다. 자유로우면서도 활기찬 분위기였다. 청년이음센터 관계자는 “낮은 고립 상태의 청년들은 자기애, 관계 형성 등 일상 회복 지원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며 “음식 만들기, 식물 키우기, 체조, 운동, 미술치료 등 다양한 활동이 준비돼있다”고 설명했다.

오후 2시 첫 번째 프로그램은 춤이었다. 8명의 청년이 5분 거리에 있는 춤 연습실로 이동했고 나머지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모든 프로그램은 자율적으로 진행됐다. 이번엔 가수 다이나믹듀오·이영지의 노래 'Smoke' 안무를 배웠다. ‘나는 달리거나 넘어지거나 둘 중에 하나야 브레이크 없는 바이크’라는 가사에 맞춰 신명 나는 춤동작이 이어졌다. 강사는 “왼쪽, 중간, 왼쪽. 괜찮아요. 찌르고 빠르게. 다시 왼쪽, 오른쪽, 왼쪽. 주먹, 엄지, 뽀뽀, 고개.” 등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청년들은 “오늘의 리더는 △△△님이다”, “동작을 이어서 하니까 어렵네” 등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았고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한 청년은 “선생님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라며 적극적인 모습을 띠기도 했다.

서울 성동구 뚝섬유원지에서 열린 청년이음센터 프로그램에서 청년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다. [사진=임춘한 기자]

오후 5시 두 번째 프로그램은 스케이트보드였다. 뚝섬유원지로 6명이 이동했고, 그 앞에서 스케이트보드를 대여했다. 별도의 강사는 필요하지 않았다. 평소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는 한 청년이 일일 강사가 돼 나머지 청년들에게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일종의 재능 기부이자 자신감을 되찾는 과정의 일환이다. 스케이트보드 강사가 된 청년은 “자, 신발 끈부터 단단히 묶으시고 가급적 같이 해봐요”라며 초보자들의 세심하게 자세를 살폈다. 참여자 중에 “너무 무서운데”라는 말이 나오자 “상체를 숙이세요, 조심조심. 살살 밀고 좋아요”라며 서로를 도왔다. 이들은 한강의 노을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즐겁게 스케이트보드를 배웠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한국생명의전화, 사회복지관 등에 상담 및 도움을 요청했다가 청년이음센터를 추천받은 경우가 많았다. 올해 청년이음센터 프로그램 지원자는 1078명으로, 이 중 502명이 선정됐다. 19~39세 고립·은둔청년이 대상으로 청년몽땅정보통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을 받았다. 고립청년은 정서적·물리적 고립 상태가 최소 6개월 이상 유지된 경우이며, 지인과의 교류가 1년에 1~2번 이하 또는 전혀 없는 경우다. 은둔청년은 외출이 거의 없고 본인의 방과 집안에서만 생활하며, 1주일간 경제활동 및 1개월간 구직활동·학업을 전혀 하지 않았을 때 해당한다. 김모씨(37)는 “원래 장사를 했었는데 건강상 문제와 겹쳐 폐업해 매우 우울한 상태였다. 솔직히 청년이라고 하기엔 나이가 많아서 지원이 망설여졌다”며 “요즘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자연스럽게 유대 관계도 형성됐다. 앞으로도 저같이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만 13∼39세 고립·은둔 청년은 최대 13만명, 서울 청년 중 4.5%로 추정됐다. 대부분 '실직 또는 취업에 어려움'(45.5%), '심리적·정신적 어려움'(40.9%),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움'(40.3%) 등으로 고립·은둔 상태에 빠졌다. 성인기 이전에는 '가족 중 누군가가 정서적으로 힘들었던 경험'(62.1%),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진 경험'(57.8%),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던 경험'(57.2%)이 있었다. 성인기 이후에는 대다수가 취업 실패를 경험했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 벗어나려고 노력해봤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고립·은둔 청년이 실제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그들이 다시 사회로 나와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사회부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