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민기자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시대적 배경인 1988년은 여러 의미에서 사연이 많았던 해다. 노태우 정부 출범과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그해, 국회에서는 헌정사상 최초의 대법원장 인준 부결 사태가 벌어졌다.
1980년대 후반이라는 ‘혼돈의 시기’, 국회가 살아 있는 권력에 치명타를 가한 사건.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에서 인준이 부결된 대법원장 후보자는 정기승이다.
국회는 1988년 7월2일 본회의를 열고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에 나섰는데, 찬성 141표, 반대 6표, 기권 134표, 무효 14표로 부결됐다. 노태우 정부의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은 충격에 휩싸였다.
여당인 민정당은 물론이고 야당인 공화당 쪽에서도 내부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힌 만큼, 대법원장 국회 인준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있었지만, 결과는 이와 달랐다. 평민당과 민주당 주도로 이뤄졌던 정기승 후보자 인준 반대가 성공한 것이다.
가결에 필요한 정족수는 투표 참여 의원의 과반수인 148표였는데 7표가 모자라서 국회 통과에 실패했다. 평민당과 민주당이 당 차원에서 기권표를 던진 상황에서 무효표 14표가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인준 부결의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기권표와 관련해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는 시각과 함께 의도적인 실수를 한 것이라는 상반된 분석이 나왔다는 점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대법원장 인준안 투표용지에는 ‘가’, ‘부’만 표시하게 돼 있는데 무효표 가운데 9표는 ‘가’ 대신에 ‘정기승’이라는 이름을 쓴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4표는 ‘정기승’이라는 이름과 함께 ‘가’라는 표시를 했고, 다른 1표는 ‘가’가 아닌 ‘찬’자를 적었다.
무효표 대부분은 정기승 후보자 인준에 찬성의 뜻을 전한 것으로 보이는데 국회법에 규정된 표기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무효표로 처리됐다.
민정당과 공화당 의원 일부가 의도적으로 무효표를 만든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렇게 중요한 표결에 임하면서 치명적인 실수를 한다는 게, 그것도 14명이나 그런 실수를 한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당시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국회 인준 표결은 처음부터 무리수였다는 평가도 있었다. 여당이 내부 표 단속과 야당의 협조 구하기에 빈틈을 보인 상황에서 무리하게 표결을 강행했다가 결과적으로 정치적인 망신을 당했다는 얘기다.
당시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표결이 부결된 직후 여당은 대표의원을 비롯한 핵심 당직자들이 사의를 표명하는 등 혼란에 휩싸였다.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는 권력에 편승한 인물이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법조계 안팎에서 사퇴를 요구받았던 인물이다. 사법부 독립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인 사람이 대법원장에 임명돼서는 안 된다는 비판의 시선이었다.
민정당은 무효표가 무더기로 나온 것과 관련해 ‘기술적인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사법연수원생들까지 반대하던 인물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올린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아울러 1988년 4월 총선 공천 과정에서 누적된 여당 내부의 불만과 반발이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 과정에서 표출된 것이란 분석도 있었다.
헌정사상 최초의 대법원장 인준 부결 사태. 1988년 7월에 국회에서 벌어진 그 사건은 노태우 정부 취임 첫해, 여권에 짙은 먹구름을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