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제일기자
2년 전 극단 선택한 경기 의정부시 호원초등학교 이영승 교사가 이른바 '페트병 사건' 학부모에게 8개월간 총 400만원을 치료비 명목으로 송금한 것이 알려져 누리꾼이 공분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해당 학부모의 직장이 SNS에 공개되면서 별점 테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일 이영승 교사에게 갑질한 학부모 신상을 폭로하는 한 SNS 계정에는 지도 사진이 갈무리돼 올라왔다. 사진 속에는 도봉역 인근의 한 장소가 표시돼 있었다. 누리꾼은 이를 바탕으로 해당 장소가 이영승 교사에게 보상금을 요구했던 학부모 A씨의 직장으로 추측했다.
아울러 이 SNS 계정 운영자는 A씨의 직책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자 누리꾼은 "A씨가 근무하는 곳을 관할하는 감사실과 통화했다"며 "감사실에서는 아직 이 사안에 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사안의 심각성, 여론 공분 등에 대해 설명해줬다"고 했다.
한 누리꾼은 "해당 영업장에 방문하면 폭언, 폭행, 성희롱 시 처벌될 수 있다느니 감정노동에 고통받는 직원들에게 친절하게 대해 달라고 안내하는데, 이건 A씨가 몸소 보여준 갑질과는 완전히 정반대 행태 아닌가 싶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후 A씨의 직장은 한 포털사이트에서 '별점 테러'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기준 1446개의 리뷰가 등록됐으며 전체 별점은 '1점'에 달했다.
누리꾼들은 "해당 은행 계좌 전부 해지한 지 10년쯤 됐는데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가 바로 살인자가 근무하는 곳이냐" "여기에서 손가락 다치면 400만원 받을 수 있나요?""계좌 해지했다. 이것밖에 할 수 없어서 화가 난다" 등 분노의 리뷰를 남기기도 했다.
한편 MBC 보도에 따르면, 이영승 교사의 아버지는 해당 학부모에 대한 형사고소를 검토하고 있다. 다만 아들을 잃은 슬픔과 분노는 큼에도 고인이 된 아들도 제자가 다치는 건 원치 않을 거라며 학부모의 신상을 유포하거나 학생을 비난하는 일은 멈춰 달라고 당부했다.
최근 들어 맛이나 서비스 등을 평가해 정보를 공유하는 별점 제도를 사적 제재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숨진 교사에게 악성 민원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학부모가 운영하는 가게와 직장 등에 무차별적 별점 테러를 가해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방해하고 있다. 사건과 전혀 관계없는 영업장이 피해를 본 경우도 있었다.
앞서 이영승 교사와 관련해 별점 테러가 쏟아진 해당 지점에 온라인 별점 리뷰에는 "가해 학부모가 회사 그만두면 별점을 복구하겠다" "이 은행에 있던 계좌 다 없애고 다른 은행을 이용하겠다" 등 해고 요청과 불매 운동 조짐까지 이어졌다.
대전 교사 사망 사건 당시 가해 학부모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밥집은 항의가 쏟아지면서 결국 폐점했다. 다른 학부모가 운영하는 미용실과 체육관 등에도 별점 테러가 잇따랐다.
그러나 이 같은 누리꾼의 사적 제재는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비방 목적으로 사실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신상을 폭로했다가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위험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적 제재 사례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지난 6월에는 한 유튜버가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의자 신상 공개를 비롯해, 서이초 교사의 극단 선택 당시에도 누리꾼들은 "여당·야당 3선 의원이 뒤에 있다"며 막무가내식 신상 털기를 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사적 제재의 원인으로 '괴리된 법 감정'을 꼽는다. 경찰의 수사나 법원의 판결이 대중의 법 감정과 격차가 클 때 사적 제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리얼리서치코리아가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0.1%가 "사적 제재에 동의한다"고 대답했다. "국가 혹은 법이 충분한 처벌을 내리지 못한다면 개인의 형벌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37.6%, "국가·법의 제재와 별도로 개인의 형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응답이 12.5%였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처벌받을 줄 알면서도 사적 제재에 나서는 것은 현재의 사법 절차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의미"라며 "국가를 믿지 못하니 '자경주의'가 널리 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