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달라진 베트남 사업환경… 성공 조건은

생산기지 탈피… 신재생 등 관심
인허가 명분 줄 밸류 투자자 원해
면밀한 정보 검토·긴 안목 필수

몇 년 전 한국 기업 한 곳이 베트남 기업의 개발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사업 인허가 취득에 들어가는 초기 자금 조달을 위해 자본금 투자를 하고, 인허가 취득 후의 사업진행 비용도 자사 투자금 또는 자사가 차입금을 끌어와 충당하기로 했다. 계약 조건상 만약 사업인허가를 얻지 못하면 베트남 기업이 자본감소를 통해 투자금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베트남 상법상 감자는 일정 기간이 지나야 할 수 있고 감자 금액에도 제한이 있다. 사업이 취소되면 베트남 기업은 한국 기업에 투자금 전액을 돌려줄 수 없었다. 베트남 기업이 이 사실을 알면서 감자 방식의 안전 조항을 제안했다면 눈 가리고 아웅이고, 모르고 그랬다면 나중에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게 순리다. 한국 기업이 "사업인허가를 못 받으면 베트남 기업의 주주 레벨에서 우리 회사 투자금만큼 주식을 되사거나 다른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니, 베트남 기업은 거부했다. 이 한국 기업은 결국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투자했다. 사업인허가를 받겠다던 기한은 이미 지난 지 오래지만, 투자금 회수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이처럼 고위험을 감수하면서 베트남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 사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일이 안 돼서 잃을 수 있는 투자금보다 일이 잘되면 얻을 기대이익이 훨씬 크다는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20여년간 국제거래 자문을 하면서 느낀 점은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이든, 외국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이든 잘 되는 기업은 예외 없이 사업 활동에 대한 정보를 직접 면밀히 수집하고 숨겨진 위험을 충실히 검증한다는 사실이다. 반면 파트너에서 받는 정보를 의사결정의 근간으로 삼는 외국 투자가 성공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베트남에 진출하는 한국기업에도 대체로 다를 바 없는 얘기다. 오너 사이의 친분과 신뢰, 로컬 파트너의 자국 네트워크는 사업 시작에 중요한 요소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아무리 좋은 사업기회 같아 보여도 현지에서 제도적·법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재고해야 한다.

베트남의 경우, 양자 간-다자간 통상규범에 편입되는 수준이 높아지면서 법제도 바뀌고 있다. 서구 기업의 진출이 늘면서 경쟁 수준도 달라졌다. 더이상 단순조립 생산기지를 자처하지 않고, 신재생 에너지와 ESG 법제에 대한 관심도 선진국 못지않다. 반부패 사정 정국이 이어지면서 인허가도 결정권자 한두 사람 안다고 성사되지 않는다. 베트남은 이제 기술력이든 인력 양성이든 인프라 구축이든, 인허가 명분을 줄 수 있는 밸류 투자자를 찾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달 베트남 국빈 방문에 필자도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양국 기업의 투자 양해각서(MOU)가 100건 넘게 체결되었다. 발전, 인프라 개발 등 전통 산업부터 패션, 인공지능 분야까지 여러 산업에 걸쳐 투자 협력이 이뤄진 것이 새로웠다. 하지만 베트남 진출 한국 기업이 아직 바뀌지 않은 것은 인적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사업 개시 패턴이다. 어떤 사업이든 인적 신뢰가 바탕에 깔려야 하겠으나, 의사결정은 그 이상의 충분한 정보에 기초해야 한다. 이번에 체결된 MOU를 1회성 이벤트가 아닌 성공적인 사업화로 이끌려면 베트남의 변화한 사업환경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긴 안목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준우 법무법인화우 국제법무팀장, 베트남 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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