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우먼톡]나눌 때 더 깊어지는 울림

환자·보호자·의료진 모두에게
연주 봉사가 '에너지'됐으면

"곧 공감 음악회가 시작됩니다."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6월의 마지막 금요일 점심시간의 시작과 동시에 필자가 참여하는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병원 스피커를 통해 나오기 시작했다. 점심을 마치고 병실에 입원 중인 환자와 보호자들이 병원 내 공연장 의자를 하나씩 채우기 시작했다. 외래 진료를 마친 필자 역시 공연장으로 향했다.

지난 4월 중순 푸르지오 아트홀 데뷔 이후 두 번째 무대다. 관객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거리에서 연주하려고 의자에 앉으니 첫 무대보다 더 떨렸다. 지금까지 많은 연주회에서 관객석에 앉아 편안히 연주를 감상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긴장감이 몰려왔다.

사회자의 소개 인사 후 첫 연주를 위해 숨을 골랐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2악장 연주가 무사히 끝났다. 긴장으로 빨라진 나의 호흡은 객석에서 보내 준 따뜻한 박수 소리에 차츰 안정되고 있었다.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에 앉는 순간 긴장의 강도는 청중과의 거리 제곱에 반비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 후 객석 맨 뒷줄에 앉아서 힘찬 박수로 동료 연주자를 응원했다. 연주 시작 전부터 마칠 때까지 40여분간 서서 연주에 함께해 주신 환자분이 눈에 띄었다. 빈 의자를 내어드리며 자리에 앉으시도록 권했다. 수술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앉을 수가 없어 서 있는 것이 덜 불편하다고 했다. 그 환자는 주사와 배액 줄이 연결된 상태로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평소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이 공연을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 내려왔어요." 순간 마음을 모아 준비한 연주의 의미가 새롭게 느껴졌다. 연주 봉사가 필요한 이유를 깨닫게 해주신 그 환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온몸을 휘감았다.

환자, 장애인, 노인 등 문화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해 공연을 여는 예술 봉사단체 이노비와 나의 인연이 10년을 훌쩍 넘겼다. 크고 작은 인연을 통해 작지만 소중한 위안을 음악에 실어서 전달하고 있다. 지난 3년은 코로나19라는 예상 못 한 어려움을 겪으며 찾아가는 음악회를 영상음악회로 대신했다. 대면음악회와 영상음악회는 분명 다르다. 위안이 필요한 관객과 만나는 이 연주가 더 소중하다는 배움도 새삼 얻었다.

이번 연주 관람을 위해 꽃을 들고 찾아온 예원학교 때 친구, 드레스가 예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용기 내 준 꼬마 청중, 바쁜 시간을 내어 가던 길 멈추고 연주에 귀 기울여 준 선후배 의료진. 모두가 소중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 같다.

연주회 날 받은 꽃 중 한송이가 줄기가 꺾여서 부러질 것 같아 테이프로 감싸 고정을 해 주었더니 잎이 많은 다른 꽃들은 다 시들었는데 제일 마지막까지 시들지 않고 남아 있었다. 예기치 못한 인생의 소나기를 만난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찾아가는 음악회가 소나기를 피할 우산을 들어 주는 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음악을 함께 나누며, 작은 관심과 기꺼이 마음을 열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지친 우리 여정에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에게 언제 올지 모를 비바람에도 잠시나마 기대고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수 있기를, 그래서 환자분들에게 깊고 긴 감동과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 다음 공연에서 연주할 곡을 서둘러 준비해야겠다.

함수연 강북삼성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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