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현기자
충북 청주시 오창읍에는 '두릉유리로'라는 길이 있다. 오창읍의 두릉리와 유리 사이를 잇는 도로다. 여기서 유리(里)는 한 글자의 행정 지명이다. 하지만 청주에서는 이 도로에 동일유리의 공장이 있어서 '유리로'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동일유리는 1940년 청주시 남문로에서 사업을 시작, 지금껏 80년 이상 이 지역을 지켜온 기업이기 때문이다. 청주에선 '유리'라면 으레 동일유리를 떠올린다. 동일유리의 현재 주력인 '복층 유리'를 생산하고 있는 오창공장에서 3대째 가업을 이어 유리를 만드는 김정환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80년 전에도 있었지만 80년 뒤에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신뢰가 동일유리의 경쟁력"이라며 "이를 위해 지속해서 투자와 연구개발(R&D)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조부가 설립한 뒤 부친인 김영진 회장이 이어받았던 동일유리만큼 역사가 있는 회사는 이 지역에서도 드물다. 비슷한 시기 문을 연 곳은 오래된 양조장 정도만 남아 있다. 충청북도 산업 연표에 동일유리 설립 시기가 기록돼 있을 정도다. 대기업을 다니던 김 대표가 회사에 합류한 것은 2003년, 그도 이미 20년 동안 유리를 만들고 시공하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김 대표는 "창업자가 이 업을 선택하고 2대는 빚 없이 사업을 건실하게 유지했다면 3대째는 그간의 기반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성장과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가 회사에 와서 적극적으로 전문건설 부문을 키운 이유다. 그는 유리가 들어가지 않는 건물이 없는데 제조나 유통만 하는 것보다는 시공까지 아우르는 전문 건설로 사업을 넓힐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유리의 경우 무한대에 가까운 조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건물에 맞는 최적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 대표는 "유리 분야 전문 건설은 정보와 경험이 바탕이 된 지식 컨설팅에 가깝다"며 "동일유리는 오랫동안 유리 사업을 하면서 축적한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매출을 기준으로 제조가 15%, 전문 건설이 85%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시공 능력 상위 건설사 대부분과 거래하고 있다. 서울대 관정도서관, 현대백화점 대구점, 신사 스퀘어, 판교 넥스트엠 등을 짓는 데 참여했다. 건설사와 공사 일부를 맡는 전문 건설 업체는 갑을관계이기 쉽지만 김 대표는 동일유리를 건설사와 대등한 입장에서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보완할 수 있는 업체로 만들었다. 견적 단계부터 건설사와 협업하고 정기적으로 세미나도 열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유리에 대해선 믿고 맡길 수 있는 기술력이 바탕이 됐다. 김 대표는 "유리 업체 중에서 수주, 제조, 시공을 모두 하는 회사는 전국에서도 손에 꼽는다"며 "생산이나 시공은 물론 전문적인 컨설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처음 왔을 때 20억원 수준에 머물던 매출도 지난해 223억원까지 늘었다. 80년 이상 이어 온 기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일견 큰 규모는 아니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동일유리는 그동안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고 올곧이 유리 한 분야에서만 부채 없이 사업을 영위해 왔다. 올해는 5월에 이미 100억원을 달성해 25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동일유리의 오창공장에서는 보통 한 달 기준 3만㎡의 복층유리를 만든다. 직원은 50명 남짓이다. 오랜 역사만큼 장기 근속한 직원들도 많다. 함께 회사와 성장한 이들이 정년을 대 채워도 원한다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김 대표의 경영 철학이다. 그러다 보니 고령자를 고려해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은 로봇이 하게 하는 등 안전한 작업 환경 만드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자동화로 유휴 인력이 생기면 다른 일을 찾아준다.
이제 동일유리의 목표는 '앞으로 80년'에 맞춰져 있다. 김 대표는 "투자와 연구개발 등으로 굴곡 없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을 찾고 있다"며 "업의 표준을 만들어 80년 뒤에도 젊은 회사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