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은주기자
정부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전문가로 채우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국민이 납부한 연금보험료를 어떻게 운용할지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가 전문성이 부족한 공무원, 노동계 인사 등으로 채워져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온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국민연금법 개정을 통해 기금운용위원에 자격 조건을 추가하는 방안 등 세부 내용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0일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는 오는 10월 연금개혁 방안으로 발표할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에 이같은 방안을 담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관계자는 “기금운용위원회에 참여하는 전문가를 늘리고, 일정한 자격 요건을 부여하는 등 거버넌스 구조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선 국민연금법 개정이 필요해 관련 내용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기금의 투자 정책과 자산배분 비중 등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국민연금법 규정에 따라 위원장은 보건복지부장관이 맡는다. 여기에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농림축산식품 차관 4명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1명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석해 총 6명의 정부측 위원이 있다. 이 외에 사용자 대표 3명, 근로자 3명, 지역가입자 대표 6명, 관계전문가 2명이 위원으로 활동한다.
지난 4월 기준 국민연금 기금 규모는 975조 5830억원에 달하는 만큼 높은 전문성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참여 위원의 기금 운용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정부측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부처 차관을 포함한 위원 다수가 정작 기금 투자 및 운용 관련 이력이 없다는 점이나, 기금위 참석률이 저조하다는 등에 대한 문제가 지적돼 왔다.
정부는 새로운 법안을 마련하기보다 국회에서 계류 중인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3월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따르면, 운용위 위원의 자격요건을 기금 운용과 직접 관련된 금융이나 자산운용 등 분야 업무에 ‘10년 이상’ 종사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위원 중 관계전문가 수를 2명에서 4명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현행법 하에서는 기금위에 운용 실무 경험이 없어도 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가능한데, 이같은 구조로 인해 특별한 전문 투자 경험이 없는 위원들 이 기금위에서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따라서다.
여기에 지역 가입자 대표(6명) 축소 등을 포함한 위원 수 조정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연금개혁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정부, 지역가입자, 노동자 등 '대표성' 중심으로 구성된 현재 기금위원 체제의 전문성 부족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며 “위원수를 줄이더라도 실질적인 전문가로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특정한 결론을 내려놓고 논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줄곧 지적돼온 노조 대표성 문제 등을 모두 포함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해외 주요 연기금에서는 전문성을 우선한 거버넌스 구조를 갖추고 있다. 캐나다연금 CPP(Canada Pension Plan)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 CPPIB(Canada Pension Plan Investment Board)는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투자 전문가들만으로 이사회를 구성해 투자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 노르웨이 연기금 GPFG(Governmet Pension Fund-Gloabal)의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중앙은행 이사회도 모두 금융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 내부에서도 기금운용위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는 지속되어 왔다. 기재부는 지난 2021년도 기금운용평가보고서에서 "기금운용위는 위원 20명 중 5명이 장차관이고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당연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기금 운용 결정 과정에 복지부, 위원회, 공단 간 권한과 책임 범위를 비롯해 업무 위임 범위가 애매한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2022년도 기금운용평가보고서에서는 노조 대표성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기금운용의 질적 변화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며 “근로자 노조가입률이 14%에 불과함에도 근로자대표를 노조 중심으로만 구성해, 미래 세대의 의견이 공정하게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